▲ 하은성 공인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

산업재해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산재보상 신청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신청’을 넘어 업무상 질병에 대한 ‘판단’을 사업주가 결정하는 제도가 2024년에도 존재하고 있다. 병역의무의 일환으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의 이야기이다.

‘복무기관의 장’이 ‘공상 및 공무상 질병’ 판단

사회복무요원은 지정된 복무기관으로 출퇴근하며, 소속기관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병역법 31조4항). 또한 복무기관의 장은 경고처분이 가능하므로 징계권을 행사하는 사업주로 보더라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 62조(심사) 1항은 복무기관의 장에게 공상 및 공무상질병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복무기관의 장이 공상 및 공무상 질병 여부를 ‘심사’하도록 하고 있다. 이의신청을 제기하면 복무기관의 장이 구성하는 고충처리반에서 심사하고, 심사 결과를 반영해 복무기관의 장이 결정한다. 결국 고충처리반 구성에 대한 권한도, 최종 판단에 대한 권한도 사업주에게 있는 셈이다.

처리 기간도, 심사 방식도 재량에 놓여

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공상·공무상 질병 신청에 대한 처리 기간을 정하지 않은 점이다. 사회복무노조에서 운영하는 제보센터에는 용기를 내어 공무상 질병 신청을 했지만 ‘일을 키웠다’는 눈치에 심사받는 것을 포기한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나아가 2023년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제기해 2024년 2월6일에 일부 개정됐으나 사회복무제도의 전신인 공익근무제도가 시행된 1995년부터 지금까지 고충처리반과 관련해서는 법령에 ‘심사 내용 관련 전문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만 규정할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심사해야 하는지를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야 규정을 개정해 대면심사를 원칙으로 하고, 외부 전문가의 자격을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로 규정했지만 외부 전문가를 단 1명만 포함시켜도 규정 준수가 가능하다.

20대 사회복무요원 김아무개씨의 이야기

2023년 9월24일 경기도 냠양주시의 한 요양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20대 청년이 복무기관의 과도한 업무 부여와 부당업무지시로 인해 온 몸의 털이 빠지는 ‘범발탈모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JTBC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경기북부병무지청에 의해 해당 복무기관은 경고를 받았다. 또 이 과정에서 복무기관장이 부당업무지시(천장·철망 공사, 휠체어 수리 등)를 한 사실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상 질병은 불승인됐다.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관리책임이 있는 복무기관에게 소속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공무상 질병에 대한 판단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남양주시의 1차 고충처리반은 전혀 전문성이 없는 공무원 6명과 보건소 의사의 자문에 따른 심사로 공무상 질병을 불인정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재심사 의견표명 의결에 따라 열린 2차 고충처리반 역시 형식적인 심사 이후 다시 불인정 처분을 내렸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공상 또는 공무상 질병에 대한 독립적인 심사기관을 지방병무청 소속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이미 병역법 시행령은 장애등급을 심의하는 보상심의위원회를 각 지방병무청장 소속으로 두고 있고, 현역병의 복무 중 질병 여부는 국방부에 설치된 군인재해보상심의회에서 판단한다. 산업재해 역시 업무상 질병 여부를 근로복지공단 소속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판단한다. 복무(업무) 중 발생한 질병을 사업주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에서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현행법 체계에서는 남양주시 사회복무요원 김씨의 공무상 질병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송을 통해 사법부의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문제 많은 제도가 지난 30년간 개정되지 않고, 공론화조차 되지 않은 것은 그동안 사회복무요원의 목소리를 대변할 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늦지는 않았다. 2024년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노동하는 사회복무요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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