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명희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장

지난해 10월 언론노조·엔딩크레딧·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들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실에 모였다. 토론회를 열어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함께 논의해 보자고 했다.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이번 토론회가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모두가 알고 있지만 차마 드러내지 않는 것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정규직 노조의 반노동자적 행태가 오늘내일 있었던 일도 아니고, 또한 언론노조만의 일도 아니라는 것을. 전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어쩌면 케케묵기까지 한 문제 제기라고 치부될 수도 있다. 혹자는 정규직 노조에 칼을 겨누는 게 결코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와 내 동지들은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을 어떻게 주체화하고 세력화할 것인지 고민해 왔고, 실제 조직화를 지원하고 싸우는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해 왔다. 방송 비정규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꼼꼼히 따져 물으며,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것을 밝혀 왔다.

그런데 우리의 노력과는 별개로 방송 현장에서 싸우는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노조·간부·조합원들의 조롱, 혐오, 투쟁 방해 등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반발은 거세졌다. 그리고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청주·광주·울산 할 것 없이 전국에서 홀로 싸웠던, 지금 이 순간 개별로 싸우고 있는 방송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동지들에 대한 정규직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의 부적절한 발언은 도저히 참아 넘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12월7일 열렸던 ‘방송 비정규직 문제, 정규직-비정규직 연대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다시 살펴보자. 토론회에서 확인된 내용은 현장에서 방송 비정규직들과 함께 싸우며 우리가 봐 왔던 참담한 현실이었고, 제안된 내용은 그 과정에서 언론노조에 바라 왔던 바였다. 무엇보다 ‘언론노조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비정규직 차별 문제 공론화 △평등한 일터 만들기 캠페인 △방송 비정규직 운동을 배제한 언론운동의 불가능성 인식 확산 △ 비정규직 조합원의 정규직 지·본부 가입 승인 △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언론노조 지·본부의 대응 원칙 수립, △언론노조 지·본부의 반노동 행태 책임 묻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언론노조는 1월 중앙집행위원회에 ‘2024년 사업 계획’으로 “본부·지부 조합원 가입범위를 비정규직까지 넓히는 안을 포함해 조합원 가입 전결 규정 개정 등 중장기 논의가 필요함. 조직 진단 사업과 함께 논의를 모아 나감”을 제출했다. 하여 나는 이 자리에서 “지역에서 들려오는 정규직 노조 간부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언론노조는 입장 표명을 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규약을 개정해서라도 반노동 행위를 한 정규직 노조 등에 대해서는 징계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고, 여러 반박을 들었다.

방송 정규직 지·본부의 비정규직 노조가입 거절, 비정규직 투쟁 외면 및 방해 등이 과연 특정한 사업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만한 이들은, 알아야 하는 이들은, 반드시 이를 교정해 내야 하는 이들은 이미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 문제다. 집단적인 침묵과 회피, 동조와 옹호가 만연한 상태이니 부끄러움조차 없어진 듯하다.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이유를 갖다 대지만, 사실상 속내는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굳이 바꿔 내기 위해 내부 논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은 불쌍한 이들이 아니다. 정규직 노조에 시혜를 애원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자격과 혜택을 운운하며, 방송 비정규직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바꿔 내기 위해 용기를 낸 이들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건 비열하다. 사측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행태를 일삼는 정규직 노조에 대해선 반드시 징계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제재를 가하는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언론 정의” “방송 정의”를 말하겠다면, 제발 투쟁하는 노동자에 예의는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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