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29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과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1일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 직후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임세웅 기자>

이미 지난 1월27일부터 시행된 50명 미만 사업장(건설업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에 대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다시 유예될 뻔했다가 1일 제동이 걸렸다.

정부·여당이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유예를 받아달라며 ‘산업안전보건지원청’안을 더불어민주당에 던지면서 시행유예가 한때 현실화하는 듯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의힘안을 거부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유예와 관련한 여야의 논의는 당분간 없을 전망이다.

산업안전보건지원청 2년 뒤 개청, 법시행 2년 유예안
양대 노총 강력 반발 … 민주당 의총 “이미 시행된 법”

국민의힘은 1일 오전 산업안전보건지원청 2년 후 개청, 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안을 두고 민주당이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전날 민주당에 이 같은 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본회의 전 열린 의원총회에 여당 제안을 상정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여당안에 사실상 동의했다는 뜻으로, 의총을 통과하면 산업안전보건지원청 설립 관련 정부조직법 개정안,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이 속전속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또는 시행유예 조건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연내 설립을 요구해 왔다. 다만 국민의힘이 제시한 산업안전보건지원청 설립안은 산업안전보건청에서 단속과 조사 업무는 줄이고, 사고 예방과 지원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여야 협상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알려지자 양대 노총은 이날 오후 국회 본청 계단에서 각각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여야를 규탄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사실상 민주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경고했고, 민주노총도 “민주당이 야합하려 한다”며 비난하는 등 화살이 민주당에 집중됐다.

결국 민주당 의총에서는 여당이 제시한 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생명이 더 중요하다”며 “정부·여당의 제안은 거부하기로 하고, 현재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대로 시행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15명 정도가 찬반토론했다”며 “일하는 분들의 생명 존중 관점에서 법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현재 상황을 유지하자는 것으로 원내대표가 결론을 냈고, 여기에 이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출신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간사 이수진 의원이 강력 반대하면서 의총 분위기가 여당안 수용거부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의총에서 감독 권한 없는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은 현재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산재를 예방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며 “가장 낮은 산재사망률을 유지하는 나라인 영국은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연구와 교육, 국제협력, 감독 기능을 포괄하는 가장 전문적인 산재예방행정조직인 보건안전청을 갖추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민주당 결정에 의원총회장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정의당과 노동사회단체 대표들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2020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29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과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의원,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는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산업안전보건청-시행유예 맞바꾸지 않을 것”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유예 재논의는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정치영역이나 국회 내에서는 언제든 협의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노동자 생명존중 차원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에는 변함 없지만, 시행유예와 맞바꾸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의총 분위기는 이미 법이 시행된 만큼 법이 갖는 취지를 존중해 정부나 산업계에서 재해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강조하고 싶다”고 전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 의총 직후 국회 본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추가협상의 여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자세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고, 어떤 협상안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따로 홍익표 원내대표를 만나느냐’는 질의에는 “지금 만날 분위기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회 논의를 끝까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민주당이 영세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끝내 외면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정부·여당과 민주당이 당분간 냉각기를 가질 것으로 보이지만, 2월 임시국회에서 법시행 유예 논의 재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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