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벌써 11명째다.

1월26일 8시10분경 부산시 기장군 치유의 숲 벌목작업 현장에서 쓰러지는 나무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은 노동자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안타깝게도 다음날인 1월27일 사망했다. 지난해 12월20일부터 1월27일까지 부산에서만 11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11건의 중대재해 중 떨어짐사고로 무려 8명이나 사망했고, 맞음사고로 2명, 깔림사고로 1명이 사망했다. 이중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가 5건으로 여전히 가장 많다. 항만·선착장·제조업·도소매업·부동산관리업·벌목현장 등 다양한 업종과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 중 상가 식당의 전기트레이 위 이물질(쥐 사체)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다리가 넘어지면서, 아파트단지 나무에 장식했던 크리스마스트리를 제거하다가 1미터 높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한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고도 포함돼 있다. 가족과 함께 평화롭고 행복하게 보내야 할 연말연시에 급작스럽게 가족을 잃게 된 유족들의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크고 힘들지, 사고를 직접 목격하고 함께 일했던 동료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상실감은 어떨지, 그리고 사고가 또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안할지, 어떻게 해야 이러한 참담한 비극을 멈출 수 있을지 많은 한숨과 절망이 교차했다.

7건의 중대재해가 연이어 발생하자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1월10일 부산지역의 모든 산업안전보건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특별 현장점검의 날’ 실시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앙상하기 그지없다. 2023년 사망사고 다발지역인 4개 구(영도구·금정구·해운대구·강서구 중심)와 건설현장과 부동산건물관리 사업장 등 고작 89개사를 대상으로만 심지어 단 하루 동안 특별 현장점검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노동부의 안일하고 형식적인 대처는 결국 특별현장점검 날 4개구 중 하나인 영도구에서 또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해 노동자가 사망했고, 1월12일, 1월14일에도 연이어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노동부의 특별현장점검이 형식적이고, 미흡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월14일까지 발생한 중대재해 10건 중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은 단 3건이고, 나머지는 법 적용유예 사업장이라는 사실이다.

참담한 노동현실을 바꾸기 위한 현 정부의 모습은 어떠한가. 매일 2명 이상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외면한 채 오히려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이 어렵다며 재계, 보수언론과 함께 50명(억원)미만 사업장 적용을 2년 더 유예하지 않는다면, 동네 식당과 제과점·카페의 사업주도 구속되거나 처벌받을 수 있다며 사실을 왜곡한 채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 여기에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중대재해를 예방해야 할 노동부 장관 또한 50명 미만 사업장에 준비가 필요하다며 법 적용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은 3년 전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더는 이렇게 죽을 수 없다’며 추위에 떨면서도, 한 달이 넘는 동안 단식과 농성투쟁으로 만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법 시행이 됐음에도 조건부를 내걸고 노동자들의 생명을 두고 협상하거나 타협하는 파렴치한 행위는 즉각 멈춰야 한다.

법 적용유예가 노동자의 죽음을 예방할 수 없으며, 2년의 적용유예가 답이 될 수 없다. 재계와 정부는 이미 1월27일부터 5명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지금 정부 역할은 일하는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현장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가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서 그동안 시행했던 노동안전보건 정책을 제대로 평가하고 진단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소영세 사업장과 현장 노동자의 애로점과 요구를 제대로 수렴해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제대로 수립할 때다. 지금은 유예가 아니라 집행이 필요할 때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