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민주노총

윤석열 대통령이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참사 특별법)을 거부했다. 참사 피해 유가족은 “바라지도 않는 배상·지원이라는 모욕적인 단어를 앞세워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했다”며 반발했다. 야당은 물론 노동·시민·사회단체로 비판 물결이 확산하고 있다.

오전 국무회의서 재의요구안 의결, 오후 윤석열 대통령 재가 ‘속전속결’

30일 오후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태원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재의요구안을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양곡관리법 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조법 개정안 등 취임 이후 1년8개월 만에 국회를 통과한 9개 법안을 거부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정부는 거부 이유로 특별법에 규정된 특별조사위원회 권한이 과도하고, 위원 구성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국무회의에서 한 총리는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특별법에 따른 특조위원 11명은 여당과 야당이 각각 4명, 국회의장 3명 추천으로 꾸려진다. 야당 인사가 주도하는 특조위는 총선을 앞두고 정쟁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게 정부·여당의 주장이다.

특별법을 거부하면서 정부는 피해자 추모 공간을 만들고, 피해지원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유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참사 피해 유가족은 지원책을 앞세워 특별법을 거부한 정부 방침에 대해 “모욕적이다”고 성토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위는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권을 통과시킨 이후인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로지 진상규명만을 외친 유족 요구를 정부는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고 비판했다.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한 적이 없는데도 정부가 ‘지원’을 특별법 거부 이유로 들고 나왔다고 성토했다. 정부가 밝힌 거부 이유에 대해서 이들은 “동행 명령장 발부와 압수수색 의뢰조항 등은 특별법 이외에도 유사한 조항을 가진 법률이 다수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정부의 피해지원위원회 설치 발표에 대해 “1년간 귀기울여 달라고 무수히 호소했을 때 눈길 한번 안 주던 사람들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들고나온 것으로, 한줌의 진정성도 없다”며 “우리는 특별법과 특별조사위 구성 이외의 어떤 것도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 “다시 국회에 가결 호소”

윤 대통령은 이처럼 국무회의에서 통과한 거부권에 대한 유가족 반발이 거센 가운데에서도 오후 전격적으로 재의요구를 재가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가게 된 특별법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국민의힘 의원 112명과 친여 성향 무소속 의원 2명,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 1명 등이 반대할 것으로 예상돼 국회 통과 전망은 어둡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역사는 오늘 현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말을 건넸다. 유가족측은 “국민의힘 의원들께 간절히 호소드리며 재의결 때 특별법이 꼭 다시 통과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다”고 기대를 놓지 않았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진상규명을 원하는 유족의 입을 돈으로 막겠다고 기만하는 윤 대통령을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강성희 진보당 원내대표는 “참사로 인한 아픔을 정쟁으로 만드는 것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정부와 말도 안 되는 왜곡선전을 하는 여당”이라는 입장을 냈다.

양대 노총도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자신의 권좌를 보전하겠다며 거부권을 남용하는 정권, 민의를 거스르는 반헌법적 정권은 더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통령의 의무를 포기한 결정”이라고 논평했다.

제정남 기자·임세웅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