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예산을 알아야 국정을 운영하고 국가의 미래를 판독할 수 있다.” 경제학자 슘페터의 말이다. 나라살림 계획을 예산이라 한다. 개인의 살림도 중요하지만 우리경제에서 가장 큰 규모인 재정규모를 가진 정부 예산을 알지 못하면서 경제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의 34.4%가 일반정부 지출이다. 2천조원을 넘는, 총소득의 3분의 1이 넘는다. 간접적 공공부문 활동을 고려한다면 더 클 것이다.

더구나 이런 공공부문 재정 지출은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활동과도 차이가 있다. 물론 강한 정부, 약한 의회라는 한국적 현실에서 정부예산안을 편성하는 기획재정부의 권한이 막강하지만 결국 그것도 넓은 의미의 정치영역에 포함된다.

이번 연구개발(R&D)예산 감액 소동에서도 나타나듯이 정치인의 발언과 예산은 사실상 무관한 경우가 많다. 정말 어떻게 편성되고 집행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줄이려 하는지는 예산안 속 숫자로 파악해야 한다. 자세한 분석은 나라살림연구소의 보고서를 참조해 달라. 이 지면에서는 줄기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동예산은 세금투입이 매우 적다

“국가의 기능은 주로 재정구조에서 결정되며, 예산은 각종 이데올로기 장식을 걷어낸 후에 나타나는 국가의 골격이다.” 경제학자 골드사이트의 말이다.

재정은 구조가 중요하다. 노동예산의 대부분은 세금으로 편성되는 일반회계가 아니라 고용보험 등 기금 중심이다. 이를 기준으로 정부 예산을 볼 필요가 있다. 전체 예산안 656조원 중 보건·복지·고용이 242조원이다. 이 가운데 고용·노동·고용노동일반이 31조원가량 된다. 전체 예산의 5%가 되지 않는다. 이것의 양과 질에 대해서는 골드사이트의 말처럼 재정구조를 봐야한다. 노동 영역 개념을 두고 논란이 많으나 우선 정부의 기준을 따라 구분해보자.

노동예산의 구조에서는 특징이 있다. 전체 31조원 중 세금으로 편성하는 예산은 3천423억원에 불과하다. 2023년보다 918억원 증액한 것이다. 이에 반해 지출은 5조7천억원이다. 그나마 정부가 일반예산에 5조원 정도의 돈을 지원하기는 한다. 이 돈 가운데 기금을 지원하는 재정은 3천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아직 기금은 자체적인 재원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출 외에도 운용되는 재정까지 더하면 노동부의 기금만 47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일반예산 재정사업의 대부분은 행정비용과 일자리 예산이다. 고용은 일반회계로, 노동은 기금으로 집행하는 모습이다.

관리운영비가 증가하고 사업비가 감소했다

무엇을 늘이고 줄이느냐는 정부의 의지를 투영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 어디에 주로 예산을 쓰느냐다. 예산 중 주요사업은 내일배움카드 5천841억원과 지방고용노동관서 인건비 4천111억원이다. 한국폴리텍대학 운영지원도 3천178억원을 편성했다. 산업인력공단 운영지원은 1천844억원이다. 네 가지 사업만 1조5천억원이다. 증액된 것만 규모만 1천600억원이 넘는다. 고용노동부 예산이 1조원 가까이 감소한 가운데 이 증가분은 엄청나다.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인프라 구축이나 운영비 지원 등 기타 사업부분은 1조원에 육박하고 증액도 2천억원이 넘는다.

정부가 주장하는 증액은 이 관리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노동부분에서 모성보호육아지원 3천937억원과 청년취업 1천120억원, 노동부분에서 산재예방시설 융자 1천23억원, 산재보험급여액 838억원 등이다. 상대적으로 사업부분과 비교해 적고 융자도 많다.

1조원 감액에 행정관리 비용이 많이 증액됐다면 감액은 필연이다. 실제 고용창출과 고용안전망 확충만 1조원이 줄었다. 사회적기업 육성 등 지역지원예산이 1조1천200억원이나 줄었다. 정책사업에서는 눈에 띄게 감액한 대목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전반적으로 감액한 것으로 보인다. 2천억원이 넘는 감액은 국민취업지원제도, 청년내일채움공제, 구직급여청년일자리 창출지원,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이다.

고용보험 등 기금에서도 1조원 가량의 많은 지출감소가 있으나 고용 및 산재보험에서만 여유재원을 13조원이나 유지하다 보니 숫자상으로 느낌이 적다. 코로나19 풍토병화(엔데믹)으로 감액된 부분이 있으나 재정건전성이나 정부의 가치 혹은 이념적인 기준에 의해 감액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국회는 노동부분 예산에 관심 없다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할 때 신규사업 예산은 1%가 되지 않는다. 노동부의 신규사업은 183억원짜리 상생협력 확산지원사업이 유일하다. 하던 사업을 늘이고 줄이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사회가 선진화돼 선진국이 하는 일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은 앞서가는 나라다. 다른 데서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 즉 혁신하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관료적으로 하던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점증주의적인 관료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국회는 주요국가 중 유일하게 예산 증액 권한이 없다. 감액 권한만 있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증액은 국회가 증액을 요청해 정부 즉 기재부가 동의한 것을 말한다. 이런 구조라 지역구 예산을 따내려는 국회의원들이 기재부에 순응한다. 그나마 우리 다음으로 보수적인 일본은 감액한 만큼 증액하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증액과 감액을 분석해 보니 감액은 대부분 정치적인 이슈였다. 그것도 정부가 예산안 속에 깎을 여지를 뒀다. 예비비,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 이자상환 같은 것들이다. 증액은 교육특별교부금, 지역사랑상품권, 소상공인 전기요금 지원 등이다, 총선에 맞춘 지역예산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어느 의원이 어떤 돈을 얼마나 가져갔는지 조만간 발표하려 한다.

그런데 노동예산의 증감액은 무엇일까. 국회에서 증액한 4조5천억원 중 노동부 증액은 100억원 이상 사업에서 청년내일채움공제 138억원, 업종별 재해예방 126억원이 있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노동예산에 대한 국회의 관심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나마 총 4조7조원의 감액의 영향이 100억원 이상 사업에서는 없었던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예산은 정책이다. 미사여구는 정책이 아니다. 정책은 예산으로 표현된다. 예산의 구조와 개별사업의 변화를 아는 것은 생활인으로서도 중요하고, 노동정책을 보는 입장에서는 더욱더 중요하다.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의 법칙’이 있다. 국가운영이 고도화되기 때문에 국회도 거대한 구조는 모르거나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소한 것만 관심을 가지고 논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정을 운영하는 주인의식으로 예산을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리인 즉 머슴들이 주인 노릇을 한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시간과 전문성의 부족은 있겠으나 일단 자신이 속한 부분부터 알아 나가고 다른 영역과 연대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골드사이트가 이야기하듯 이념을 벗어나서 보면 큰 차이가 없는 행정구조로 점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는 만큼 느낀다. 정부가 하는 일은 법과 예산으로 표현된다. 헌법 52조와 54조는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바로 법률과 예산이다. 따라서 정부와 관련된 우리 삶도 대부분 법과 예산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력이 싫어하는 것은 기억과 연대다. 이것을 업으로 삼는 필자 같은 사람이 기억하면서 조금이라도 길을 닦겠다. 분야와 영역마다 직접 정책을 알고 일하는 사람과 연대를 강화해 실천을 이끌었으면 한다. 언제든 궁금한 것은 제안하길 바란다. 필자와 나라살림연구소에서 안내하겠다.

나라살림연구소장 (jcs6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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