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지난해 봄 닭장을 만들었다.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철망으로 동서남북 사방과 땅바닥을 두르고 플라스틱 지붕을 덮었다. 바닥에 철망을 두르는 게 중요하다. 족제비 같은 야생동물이 땅을 파고들어 와 닭들을 몰살시키거나, 쥐가 들어와 사료를 훔쳐 먹기 때문이다.

기둥을 세우면서 한쪽 구석에 1미터 높이로 닭들이 살 집의 바닥을 만들고 달걀을 낳을 나무 상자를 두었다. 그 위로는 닭들이 잘 때 올라설 횃대를 가로질렀다. 지상 1미터에 자리한 집에서 땅으로 내려가게 가로세로 30센티미터 문을 내고 길쭉한 나무판을 걸쳐 주었다. 나무판에는 편히 밟고 오르내리게 손 한 뼘 간격으로 막대기를 박아 줬다. 나무판 밑에 물그릇과 밥그릇을 놓고, 그 옆으로 출입문을 만들었다.

원래 키우던 늙은 암탉 두 마리를 새 닭장에 넣어주고, 읍내 시장에서 마리당 6천원을 주고 다섯 마리를 사왔다. 알에서 나온 지 서너 달 된 것들이니 닭보다는 병아리라 부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수놈 한 마리 암놈 네 마리였다. 건강히 자라길 바랐지만, 여름이 오기 전에 어린 닭들 가운데 수탉 한 마리와 암탉 한 마리가 죽었다. 늙은 암탉 한 마리도 늙어 죽었다.

늙은 암탉들은 재작년 가을부터 달걀을 낳지 못했는데, 새 암탉들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달걀을 낳기 시작했다. 세 마리가 힘을 합치니 어떤 날에는 세 개, 어떤 날에는 두 개, 한 달이면 몇십 개의 달걀이 생겼다. 달걀을 낳을 때마다 암탉은 꼬꼬댁 꼬꼬댁 거리며 달걀 탄생의 복음을 세상에 알렸다.

늙은놈 하나와 어린놈 셋이 모인 암탉 공동체의 달걀에서는 병아리가 나오지 않는다. 달걀은 무정란이 있고 유정란이 있다. 닭은 주변에 먹이가 풍부하고 안전하다고 느낄 때 달걀을 낳는다. 수탉과 짝짓기를 하면 암탉은 한 달 동안 유정란만 낳는다고 한다.

올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몸통이 가장 작은 암탉이 무정란을 품고는 밥 먹을 때 빼고는 꼼짝하지 않았다. 온기를 간직한 달걀을 빼내고 다음 날 보면, 그놈은 새 달걀들을 품고 앉기를 12월 내내 계속했다.

연말 즈음 유정란을 구해 인공부화기에 넣으면 병아리를 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향에 내려간 김에 유정란 여섯 개를 사서 동짓달 내내 무정란을 정성스레 품은 암탉의 따뜻한 배 밑에 넣어주었다.

새해가 밝았다. 따뜻한 날도 있었지만 아침 기온이 영하 15도 밑으로 내려가는 추운 날도 있었다.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가 닭장을 살폈다. 지극 정성인 이놈은 얼음통으로 변한 물그릇을 앞에 두고 자기가 낳지도 않은 유정란을 품고 앉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유정란을 만져보면 따뜻하기는 한데 과연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와 ‘만물의 영장’이라 으스대는 나에게 생명의 신비로움과 위대함을 일깨워 줄 것인가.

자그만 몸통의 암탉이 유정란을 품은 지 정확히 스물하루가 지났다. 병아리 탄생의 기대를 갖고 닭장 안을 들여다봤다. 암탉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날씨가 너무 추워 부화는 무리였구나 생각한 순간 암탉 옆으로 깨진 달걀 껍데기가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암탉을 살짝 밀치니 노란 병아리가 삐약삐약 거리며 튀어나왔다. 암탉을 들어보니 막 껍질을 깨고 나온 다른 녀석이 보였다.

달걀 부화에 필요한 날수는 스물하루다. 부화에 적합한 온도는 35~40도다. 새해 들어 봄처럼 따뜻한 날도 있었지만, 한파가 몰아친 날도 여럿 있었다. 그날들을 견디고 견뎌 몸통이 가장 작은 암탉은 마침내 생명의 위대한 탄생을 이루고야 말았다.

닭을 키워본 사람은 안다. 꼬끼오하며 우는 닭은 암탉이 아니라 수탉이라는 사실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에 등장하는 닭은 꼬끼오하고 우는 수탉이다. 수탉은 새벽만 아니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꼬끼오 꼬끼오하며 시끄럽게 울어 댄다.

암탉은 꼬꼬댁 꼬꼬댁하며 소리를 낸다. 내 귀에는 우는 게 아니라 노래하는 걸로 들린다. 달걀을 낳았을 때 암탉은 꼬꼬댁 꼬꼬댁거리며 탄생의 기쁨을 알린다. 그런데, 병아리가 태어난 날 암탉은 꼬꼬댁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고요와 침묵 속에 새 생명이 태어났고, 암탉은 울지 않았다.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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