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 9일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참사 1년3개월 만이다.

다음날 여러 신문이 이를 보도했다. 한겨레와 매일경제,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1면 등 주요 면에 이 법을 ‘이태원 특별법’이라고 호명했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이렇게 불렀다. 다만 한겨레는 제목에 ‘여당은 끝내 외면했다’고 덧붙여 집권 여당을 비판했고, 동아일보는 ‘야당 단독처리’에 무게를 실었다. 매일경제는 ‘거야(巨野) 마이웨이’라는 제목을 붙여 단독처리한 야당을 일방으로 비판했다. 그래도 법 이름은 ‘이태원 특별법’으로 같이 불렀다.

한국일보는 ‘야(野) 주도 통과… 특검 추천권은 빠져’라는 제목을 덧붙여, 여당의 입장을 고려해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뺏다는 내용까지 담아 균형을 맞춰 보도했다.

여야는 본회의가 열린 9일 오전까지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놓고 협상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반대를 고려해 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검사 요구권을 삭제하고 활동기간도 1년6개월에서 석 달 줄였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법 제정을 “안전이 아니라 정쟁과 갈등을 선택했다”고 반발했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는 이 법 명칭부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라며 더 센 제목을 달았다. 법 이름에 ‘참사’를 넣어 당연히 제정했어야 할 법이 뒤늦게 국회 문턱을 넘어선 걸 아쉬워했다. 경향신문도 법 이름에 ‘참사’를 넣었고, 늦었지만 법 제정으로 ‘진실 향한 첫발’을 뗐다고 강조했다.

기자가 어떤 사안을 취재할 때 그 사건 또는 사안의 이름을 무엇으로 호명하는지는 엄청 중요하다. 명칭은 기자의 철학과 가치가 100% 개입할 수밖에 없다.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인천대교 공사에 투입된 삼성물산 크레인 부선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를 예인선이 끌고 가다가 정박했던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해 유조선에 있던 약 9만 배럴의 원유가 인근 해역에 유출돼 양식장과 어장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우리 언론은 대부분 이를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라고 호명했다. 좋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해당 지역 이름을 사용하는 건 2차, 3차 피해를 낳을 수 있다. 특별히 그 지역이 가해의 직접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이상 지역 이름을 명시해 낙인찍는 짓은 피해야 한다. 이런 ABC도 잊은 채 언론은 ‘태안 기름유출’ 사건을 고집했다. 가해 기업을 숨기려는 매우 나쁜 의도다. 몇몇 뜻있는 기자나 극소수 대안언론이 ‘삼성 기름유출’ 사건이라고 호명했지만, 주류 언론 대부분은 ‘태안 기름유출’이라 불렀다.

덕분에 국민은 연인원 수백만 명이 거름종이와 부직포를 들고 태안 해변에 가서 여러 날 바위와 자갈돌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자원봉사가 끝난 뒤에야 사건의 주범은 삼성물산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도 특별법 이름을 매우 독특하게 호명한 신문이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1면에 “거야(巨野) ‘핼러윈 특조위’ 강행”이란 제목으로 달았고, 8면에 이어진 관련 기사 제목에도 “민주, ‘핼러윈 특조위’ 1년 6개월 끌고 갈 듯”이라고 제목 달았다. 같은 날 사설도 “민주당 ‘핼러윈 특조위’ 강행, 제2의 ‘세월호 특조위’ 불 보듯”이란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 제목은 국민에겐 야당이 밀어붙인 건 특별법도 아니고 ‘특조위’란 인상을 심기에 충분했다. ‘핼러윈’이란 이름을 넣어, 축제에 놀러 갔다가 죽었다는 인상을 심기에도 충분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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