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연 하이징크스 대표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에 언급하기엔 조금 불길한 주제일 수 있겠지만, 해외 음악가의 콘서트를 제작하는 공연기획자에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은 공연 취소 사태다. 지난 4년 동안 이어진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감염병이나 홍수, 지진 등의 천재지변은 계약서에도 적혀 있듯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확률이 낮다. 일반적으로 공연 취소는 다른 사유에서 비롯되곤 한다.

비자나 화물 운송, 항공편, 음악가의 본인 또는 가족 병환 같은 문제일 수 있다. 또는 직전 공연지에서 사고나 누군가의 미숙한 운영에 따른 문제나 혹은 그저 운이 나빠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들로 공연이 엎어지는 일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서울 홍대 인근에서 독립 음악가의 크고 작은 공연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어느덧 십 년이 다 돼 가지만, 이 일은 정말 도박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공연업계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로 부각한 것은 바로 음악가의 ‘정신건강(Mental Health)’ 문제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음악 페스티벌에 가거나, 좋아하는 해외 음악가의 공연을 즐겨보는 팬이라면 익숙한 단어로 느껴질 것이다. 해당 사유로 투어 및 공연을 취소하는 음악가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23년에도 저스틴 비버, 루이스 카팔디, 알로 팍스 등이 정신건강 문제로 공연을 취소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공연이 취소되는 일은 팬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겠지만, 다른 그 누구도 반가운 소식일 리 없다. 공연에 큰 노력을 기울여 온 제작자에게도, 팬들과의 약속을 뒤엎게 된 음악가에게도 고통스럽기는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섭외나 준비 과정에서 음악가의 정신건강 문제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복불복처럼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도박이라고.

<넷플릭스>
<넷플릭스>

지난해 11월, 음악가의 정신건강 문제를 다룬 작품이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영국 팝 음악가인 로비 윌리엄스의 다큐멘터리다. 상대적으로 국내 인지도는 적지만 로비 윌리엄스는 영국에서 비틀스 이후 가장 크게 성공한 보이그룹 ‘테이크 댓’ 출신으로, 솔로로 전향한 이후에도 큰 성공을 거둔 영국의 팝 아이콘이다. 다큐멘터리는 데뷔시절부터 현재까지 25년에 이르는 궤적을 담은 영상을 로비 윌리엄스가 직접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사실성이다. 음악가로서 거둔 찬란한 커리어의 이면에 담긴 정신적 트라우마를 그대로 보여준다. 10대에 맛본 때 이른 성공에서 기인한 정신적 성숙 기회의 박탈과 미디어 공격에서 비롯된 고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것은 수십만 군중이 모인 공연을 앞둔 로비 윌리엄스의 얼굴에서 시각적으로 선명히 드러난다. 극도로 창백해진 얼굴과 갈 곳을 잃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동자, 긴장으로 배어 나오는 식은땀과 손 떨림 등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 세계 음악가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코로나19 이후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재정적 위기, 사회적 고립 문제, 기후 문제 인식 등 비단 음악가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계 전반에 정말로 가혹한 천재지변이었다. 이제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지만 그 시절이 남기고 간 상흔은 모두에게 새겨졌다.

작품 말미 로비 윌리엄스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 덕분에 정신건강 문제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단순히 리스크 회피라는 사업적 관점에서 내가 선택하는 음악가가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개인이 저런 종류의 깊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진실로 희망한다. 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 사실 지금껏 글쓴이가 준비한 공연이 취소된 것은 코로나로 인한 1건 외엔 없지만, 다른 공연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보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번 해에는 공연 취소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특히 그것이 음악가의 정신건강 문제가 아니기를 소망해 본다.

하이징크스 대표(doyeon.lim@highjink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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