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한국의 행정기관과 재판부는 대체로 약자들에게 가혹하고 그 가혹한 조치는 매우 신속하다. 재판정에서 떠돌아다니는 법률의 말들은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노동자가 피해자인데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측에 대한 가해로 인식되는 일도 허다하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없고, 기업과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인정하는 한국에서는 이런 왜곡된 판결이 너무 자주 내려진다. 그런 판결은 기업과 자본이 법망을 피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정당화한다. 법원의 판단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무례한 판결을 보면 속이 상할 수밖에 없다.

지난 11일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가 금속노조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 15명을 상대로 제기한 철거공사 방해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청산과 공장 철거에 맞서 공장에서 농성하고 있는 이들을 쫓아내는 데에 일조하겠다는 것이다. 법원은 공장 철거를 방해하면 노조는 200만원, 개인은 50만원을 사측에 지급하라고도 했다. 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공장 옥상에 올라가 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지, 왜 회사는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오로지 공장을 철거하는 데에만 골몰하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노조의 투쟁이 사측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차갑게 판결했다.

2022년 10월4일 일본의 닛토덴코 지분 100%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화재가 발생했다. 생산설비가 불에 타자 닛토덴코는 화재가 난 구미공장의 업무를 평택공장(한국니토옵티칼)으로 옮기고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청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해 2월2일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노동자 17명을 해고했다. 외국인투자기업인 이 회사는 그동안 법인세 감면 등 수많은 혜택을 받았다. 공장의 화재로 막대한 화재보험금도 받았다. 공장설비를 다시 들이고 가동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지만 회사는 공장 재가동을 포기하고, 노동자들을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로 고용승계하는 것도 거부했다. 노조와 노동자들을 내모는 청산에만 힘을 썼다.

그런데도 회사의 책임을 진지하게 묻는 곳은 없었다. 이 해고를 정당하다고 한 중앙노동위원회는 한국옵티칼이 해고회피 노력을 했는지 제대로 살펴봤을까. 그들은 ‘평택공장으로의 고용승계’라는 너무나 쉽고 간단한 고용유지 노력을 사측이 거부했는데도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노동자에 대한 가압류를 승인한 재판부는 사측의 손해를 제대로 증명하지 않았다. 그때는 공장철거승인이 나지 않아 손해배상의 근거가 없었지만 노동자들에게 항변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가압류를 결정했다. 공장철거를 승인해 노동자들의 농성을 철거방해 행위로 만든 구미시는 한국옵티칼이 다양한 혜택을 받고도 먹튀를 한 것에는 눈을 감았다.

자료사진 <이재 기자>
자료사진 <이재 기자>

고용승계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먹튀를 한 외국인투자기업의 부당한 행위에 구미시와 재판부, 노동위원회가 모두 눈을 감았고 오히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가해자로 몰았다. 이들은 기업과 하나가 돼 노조와 노동자들을 ‘돈’으로 겁박한다. 1인당 4천만원의 손해배상과 임차보증금과 부동산 가압류, 그리고 매일매일의 이행강제금 등 성실하게 일해 왔던 노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돈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는 데에 공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기에 당당하게 이 고통에 맞서고 있다.

‘노란봉투 운동’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국가폭력과 손해배상으로 죽어 갈 때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시민들이 힘을 모았던 운동이다. ‘돈’으로 노동자를 옭아매지 못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지 못하게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던 운동이다. 먹튀자본에 책임을 묻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칼날 같은 공장 위에 서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에게 연대가 필요하다. 법원과 행정기관이 노동권을 존중하게 하고 기업의 부당한 행위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함께 소리쳐야 할 때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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