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한도 위반에 대한 행정해석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약 한 달 전에 있었던 대법원 판결을 반영한 것이며 발표 즉시 적용된다. 기존에는 하루에 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을 연장근로로 판단했으나 변경된 해석에서는 1주일 총 노동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을 연장근로시간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13시간씩 주 4일을 일한다면 기존의 방식에서는 하루에 5시간씩 총 20시간의 연장근로로 계산돼 주당 12시간으로 연장근로가 제한된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위법이 된다. 그러나 변경된 행정해석에서는 1주일 근로시간이 총 52시간이므로 40시간을 제외한 12시간만 연장근로로 계산돼 법적으로 문제가 없게 된다. 결국 이전보다 훨씬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즉 변동이 크게 배치할 수 있게 되고 하루 노동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게 된다. 과거 주말을 일주일에서 제외하던 괴이한 행정해석을 바꿔서 주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데는 그렇게도 오래 걸리더니, 노동자에게 불리한 쪽으로는 참 발 빠르게도 기회를 잡아 행정해석을 바꿨다.

새로운 행정해석에서는 일주일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필요한 날로 몰 수가 있다. 물론 여기서 ‘필요’란 사업주의 필요다. 할 일이 없는데 노동자가 스스로 야근을 할 테니 연장근로수당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렇게 노동시간의 불규칙성이 커지면 노동자의 건강에 해롭다. 우리나라의 2017년 근로환경실태조사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Lee 등, 2021)에서 매일의 노동시간이 같지 않거나, 매주의 노동시간이 같지 않은 경우 그렇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우울증상이 성별과 주당 노동시간에 따라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7배까지 높았다. 그 위험은 주당 노동시간이 법에서 정한 한계인 52시간 이하인 경우에도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유럽의 연구(Costa 등, 2006)에서도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스트레스와 불안증상이 절반 수준이었다. 게다가 하루 노동시간의 법적 제한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 새로운 행정해석은 과도한 연속근무를 가능하게 한다.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하루 이틀로 몰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법적으로 규정된 휴게시간(8시간 근무당 1시간)만 빼고 밤낮없이 종일 일하고, 심지어 다음날까지 계속 이어서 일하는 것도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업무 일정이다. 현재도 경비원·택배노동자 등 주로 야간근무를 하는 직종에서 극심한 연속근무 후 과로사 사례가 드물지 않게 알려지고 있는데 장시간 연속근무를 더욱 조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논란이 됐던 게임업체 ‘크런치 모드’로 인한 과로사·과로자살 이후 노동부는 근로감독으로 업계에 만연한 근로시간 규정 위반, 즉 연장근로시간 한도 초과를 수두룩하게 잡아 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주일 중 이틀 연속 밤샘근무를 하고 나머지 날은 적게 근무하는 다소 짧은 크런치모드라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된 것이다.

정부와 경영계는 노동시간을 더 유연화하는 것이 대단히 선진적이고 개혁적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렇지만 40시간으로 정해진 법정노동시간이 연장근로라는 이름으로 52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나라 노동시간 규정은 무척 유연하다. 주 최대 69시간제라고 뭇매를 맞았던 지난해 근로시간 개편안을 처음 발표할 때 내세운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트렌드였다. 독일·영국 등 외국에서도 근로시간 단위가 길다는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 독일은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으로 정하고, 하루 최대 10시간까지만 노동할 수 있고 6개월간 평균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을 지켜야 한다. 프랑스는 법정 주당 노동시간은 35시간이고 역시 하루 최대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영국은 하루 8시간 노동에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17주 평균 48시간으로 제한하며 24시간당 최소 11시간의 연속된 휴게시간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정도면 글로벌 트렌드는 우리나라보다도 노동시간이 훨씬 경직돼 있는 것 아닌가. 최소한 과도한 집중노동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못하도록 하루 노동시간의 제한은 먼저 만들어 놓았어야 했다. 정부는 어떻게든 이윤을 위해 노동시간 유연성을 더 확대하려고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인데, 그 반대 방향으로 노동자의 건강과 일-삶 균형을 높여야 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동자가 노동시장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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