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사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폭이 기업대출의 2배가량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삼은 정부 정책과 주주자본주의가 만나며 자금의 효율적 중개를 통한 실물결제 지원이라는 은행 본연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윤을 늘리려는 유인을 줄이기 위해 주주이익을 제한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동연구원은 24일 ‘은행 고수익 논쟁을 통해 본 은행업의 구조적 문제’를 주제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원이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은 1999년 100조2천억원에서 2022년 586조1천억원으로 5.9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60조2천억원에서 599조9천억원으로 9.9배 늘었다. 자금회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업 대출은 회피하고, 좀 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개인을 상대로 한 부동산 대출에 집중한 결과로 풀이된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이를 “(정부 정책으로) 예대마진에 의한 이윤추구가 자유로워진 은행들은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렸다”며 “역사적으로 자금의 공급자였던 가계 부문을 자금의 주된 수요자로 변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는 은행이 독과점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은행권을 공격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자장사를 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은 독과점 체제를 해소해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구원은 이에 대해 “과도한 신용창출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 무력화로 대기업집단 경제력 집중 문제를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횡재세를 도입해 은행의 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등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한시적 세금으로는 은행의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연구원은 “은행은 자금조달이라는 사회적 성격을 가졌지만, 현재 자금 운용은 이윤 극대화 차원에서 이뤄지는 이해 상충의 문제”라며 구조적 문제를 설명했다. 자금운용이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적(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모순을 해소할 방안으로는 주주배당 최고한도를 제한하는 제도 도입을 제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한진 연구위원은 “주주이익을 제한하면 무조건 이윤을 늘리려는 유인이 줄기 때문에 은행의 거시건전성과 안정성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금융 이용 기회의 불평등도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다”며 “순이익 중 주주 몫은 어느 정도가 적정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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