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제3지대론’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언제나 총선을 앞둔 시점엔 합종연횡이 반복했다. 1992년 자본가 정주영은 14대 총선 직전 여러 기성 정당 정치인들을 영입해 창당에 이르렀고, 31석의 원내 정당이 됐다. 하지만 그해 연말 대선에서 3위에 그치자 1년여 만에 소멸했다. 2007년 창조한국당 역시 몇몇 정치권 인사들을 영입해 원내정당에 성공했지만, 대표 얼굴 문국현이 대선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얻자 공중분해됐다.

앞선 전례들과 최근 합종연횡 흐름 사이 유사성이 있다면, 상황 논리에 몰린 정치인 지망생들의 생존경쟁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만, 이념·정책적으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자들이 적과 동지를 구별하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지만 이들에게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실 선거 전 합종연횡은 의원직 유지와 자파의 패권에만 관심을 보이는 보수정당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다. 몇몇 정치엘리트들 중심의 정치는 바로 보수정당들의 특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에는 진보정당 인사들의 이합집산도 도드라진다. 조성주나 류호정, 박원석 등이 그렇다.

정의당 내 작은 의견그룹이던 ‘세 번째 권력’은 2022년 정의당 대표 선거 당시 직무성과급제 등을 제기하면서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이 노동조합의 경제투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진보정당노선 폐기’를 선언하고 금태섭이나 이준석과의 친화성을 자랑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출신의 일부 인사들조차 이런 주장에 편승해 전략 없는 ‘양보론’과 도덕주의적 비난을 쏟아 냈다. 이들은 “진보 타이틀도 버릴 수 있다”고 호기롭게 선언했고,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던 기자들은 이를 보도했다.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당내 호응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차기 리더로 부각되던 인물들이 다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자, 정의당 리더십 공백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듣자하니 최근 시민사회 일각의 몇몇 원로들이 진보정당들과 민주당 사이를 들락날락 거리며 거간꾼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5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친민주당 성격의 원외정당들과 함께 ‘개혁연합신당’을 제안했다. 민주당을 둥지로 삼아 정의당, 녹색당, 진보당 등까지 포괄하는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난 21대 총선의 위성정당이 각각 거대 보수 양당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번엔 바깥에 있는 소수정당들이 제안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마침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긍정적 응답을 했으니 원로들의 정치적 기교가 다음 스텝으로 옮겨간 셈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진보의 외피를 두른 군소정당들이 자발적으로 위성정당 되길 자처하며 의석을 구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념도 없고 체면도 없는 광대극에 어찌 우리의 미래가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를 타진한 원로들은 사회운동을 망가뜨리는 정치적 겁박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당-녹색당 입장에서 이런 유혹을 떨치고, 진보정당으로서 최소한의 자리를 지키려면 스스로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한데 오늘날 진보정당들의 처지는 언론의 관심에서도 멀어졌고, 당 바깥의 사회운동과도 멀어져 있다. 지지율도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운동과 거리를 두겠다고 공언했던 진보정당의 오류가 자초한 업보지만, 씁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렵다.

진보정당은 수많은 활동가들의 피와 땀이 만든 산물이다. 다음 라운드를 위해서라도 지나온 길을 어지럽히지 않길 바란다. 위성정당 합류는 친민주당 아류 정당들처럼 영혼까지 팔아치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돌아가야 할 곳은 사회운동에 기반한 제도정치에서의 전술적 유연함이지, 여의도 문법을 흉내 낸 위성정당이 아니다.

동시에 사회운동은 몇몇 원로들이 제멋대로 운동을 대리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진보정당들이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노력 역시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지난 과오를 딛고, 새로운 구심을 통해 발걸음을 내딛으려면 작은 받침대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을 잘 닫아야, 재개점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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