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2024년 세계는 더욱 분열하고 갈등하고 경쟁할 기세로 치닫고 있다. 글로벌 분열과 갈등의 그림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학살, 한반도의 적대적 환경 조성 등 지정학을 넘어 사실 경제 분야에 더욱 짙게 깔렸다. 미-중 경제전쟁을 계기로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제조 공급망의 글로벌 분열과 재편은 올해에도 더 심화될 전망이다. 중국 화웨이의 5G 기술 도입을 전 세계적으로 봉쇄해 왔던 미국은, 2022년 10월부터는 중국의 14나노 이하 반도체 개발을 막기 위해 전 세계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분리시켜 왔다. 최근에는 카메라 이미지 센서, 마이크로 컨트롤러, 아날로그 칩, 전기차용 개별 반도체 기기 등에 활용되는 기존 성숙공정 반도체까지 중국을 봉쇄하려 하고 있다. 심지어 반도체 설계관련 오픈소스 기술까지 중국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려는가 하면 마이크로소프트(MS) 중국 연구소 폐쇄를 압박하는 등 사실상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움직임마저 있다.

국내총생산(GDP) 24조달러의 미국은 세계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최첨단 기술들의 지적 재산권과 설계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GDP 17조달러로 세계 제조업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두 거대 경제 사이의 복잡했던 상호 의존 연결선들이 끊어지고 단절되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까? 대만 파운드리업체 TSMC는 지금까지 가장 큰 고객이었던 중국 기업들로부터 더 이상 수주를 받을 수 없다. 유럽 ASML 역시 중국에 첨단 노광장비를 수출할 수 없고,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체 수출의 절반을 의존해 왔던 중국 반도체 수출길이 막힌다. 이런 추세는 점점 더 많은 제품과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면서 세계 경제의 규모 축소, 공급망 혼란, 그리고 고통스런 재편을 낳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의 분열과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적 단절 심화는 공급망 재편 이상의 위험성도 있다. 미국 정치학자 헨리 파렐과 아브람 뉴먼은 최근 저술한 <언더그라운드 제국>에서, 미국이 지금처럼 글로벌 금융과 정보통신, 공급망 네트워크의 급소를 무기 삼아 자신의 경쟁자인 중국을 배제하고 굴복시키려 한다면 그 결과가 매우 우려스러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왜 그런가? 유럽이나 아시아 동맹국가들도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요구에 따르기는 하겠지만, 매우 불편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불신이 깊어질 수 있단다. 이미 글로벌한 구조에서 비즈니스를 해 왔던 애플·TSMC·삼성 같은 다국적 기업들도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정보·제조 네트워크에서 계속 배제되고, 굴복을 강요당하는 중국은 이를 피할 대안을 찾게 될 것이고, 궁지에 몰리면 무력적 방법 등을 동원해서라도 상황을 타개하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 1차 대전 후 과도한 전쟁배상 부담을 지워 그 반동으로 파시즘으로 치달은 독일이나, 2차 대전을 앞두고 석유 공급망 봉쇄를 돌파하고자 진주만 공격을 감행한 일본이 역사적 선례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갈등과 분열로 치닫는 글로벌 경제상황을 반전시킬 대안으로서 뜻밖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제안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 지금은 자국의 경제 군사안보를 명분으로 경제전쟁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전 지구적으로 공통적인 안보위협은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재난’일 수 있다. 따라서 각 국가는 서로 경쟁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후위기를 막는 방향으로 자신들은 물론 상대국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들의 경제적 무기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를 막고 포스트-탄소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각 국가는 유럽의 선례를 따를 수 있는데, 국내적으로는 탄소가격제도나 녹색산업정책을 도입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탄소국경조정 같은 ‘녹색관세’ 부과, 탄소집약적 산업에 대한 해외 투자금지 조치 같은 강력한 제재를 부과함으로써 국내적으로도 이롭고 글로벌하게도 이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국의 협소한 이익에 매달려 글로벌 불안정성과 위험성을 높이는 행동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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