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한 달에 700여쪽에 달하는 공문을 처리하는 등 단기간에 집중적인 과로에 시달리다가 뇌출혈을 일으킨 육군 공무원에 대해 법원이 공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육아로 인해 초과근무시간이 적었다는 점이 요양 불승인 사유로 언급됐지만, 법원은 업무상 과로가 명백하다고 봤다.

새 사업 시행 2년째 야근하다 뇌출혈

1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단독(최선재 판사)은 육군인사사령부 소속 공무원 A(51)씨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육군인사사령부 인사행정처에서 도서관 운영을 담당한 A씨는 2020년 2월25일 오후 10시30분께 야근 도중 갑자기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안면마비 증상이 왔다. 즉시 119로 이송된 후 ‘급성뇌내출혈’을 진단받았다. 2019년 1월부터 병영도서관에서 근무한 지 약 1년 만이었다. A씨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뇌출혈이 발병했다며 인사처에 요양을 신청했지만 거부됐다. 인사처는 “뇌출혈은 A씨의 체질적 소인으로 인해 발병했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21년 3월 소송을 냈다.

판결문에 따르면 뇌출혈 발병에는 A씨 보직이 바뀌며 업무가 집중된 영향이 컸다. A씨는 육군 전자도서관 사업이 처음 시행된 2019년부터 도서관 운영·예산 업무 전반을 담당했다. 특히 뇌출혈이 온 2020년 2월에 처리한 공문 분량은 700쪽에 달했다.

부서에 결원이 생기며 일은 더 가중됐다. 하지만 초과근무시간은 기준에 미달했다.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 따르면 A씨의 2019년 9월~2020년 2월까지 월별 시간외 근무시간은 4~7시간에 그쳤다. A씨는 “육아로 인해 1~2시간 정도 초과근무를 한 후 일단 퇴근하고 집에서 추가 업무를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육아로 퇴근 후 업무처리 “기록과 달라”

법원은 과로·스트레스로 뇌출혈이 생겼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먼저 초과근무시간 기록만으로 업무상 과로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 판사는 “정확한 근무시간을 산정하기는 어려우나 원고가 육아를 위해 퇴근 후 집에서도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동료 B씨와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회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B씨는 “규정상 퇴근 직후 1시간은 초과근무로 인정되지 않는데, A씨는 자녀를 돌보기 위해 저녁식사를 하지 않고 초과근무도 신청하지 않은 채 퇴근시간부터 연이어 1~2시간 정도 더 근무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A씨는 2020년 2월 오후 6시5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근무한 날이 엿새 중 사흘에 달했다.

전자도서관 시스템이 마련된 지 1년이 지나 A씨가 단순한 사후관리만 담당했다는 인사처 주장도 배척했다. 최 판사는 “원고 업무가 과중하지 않았다면 야간근무를 할 이유가 없다”며 “결원 발생으로 인해 추가된 업무까지 포함해 업무량이 적지 않고 사업계획과 예산 업무는 난도가 낮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초 업무량이 집중돼 기안문과 공문 숫자 역시 많이 증가했다고 봤다.

법원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도 “새 업무로 업무 강도와 환경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것으로 파악되므로 뇌출혈은 단기간에 업무 부담 증가로 유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소견을 냈다. 최 판사는 “원고는 상병 발병일 무렵 46세 여성으로서 특별한 개인적인 소인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소송 과정에서 재해자가 재택근무를 해서 객관적인 근무시간 산정에 반영되지 않은 부분을 최대한 보완했다”며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 내에서의 업무 특성상 재해자가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료 증인 신청 등으로 증명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