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동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요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에 대한 문의가 많다. 고용노동부가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한 각 사업장에 시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권력 행사의 명분은 “법치확립”이다. 이성희 노동부 차관은 “노사법치”를 강조하면서, 노사합의로 작성한 단체협약일지라도 형식적으로 노동부 고시보다 면제 한도를 높게 잡기만 하면 “반드시 근절돼야” 하는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불법행위”라고 선언한 바 있다.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노동부의 말이 맞다. 노조법 24조4항 문언상 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해 노조활동 시간에 대한 급여를 지급하기로 하는 합의는 무효라고 읽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노조법 조항이 전수조사에 가까운 특별감독을 실시함으로써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법자들이 노조법상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둔 취지는 헌법상 노동 3권 실현의 주체인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회사가 노동조합에 ‘일 안 해도 월급 줄 테니, 회사가 하자는 대로 거수기 노릇을 하라’라고 부추기는 것에 호응해서 노조가 노동자들 권리를 내팽개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타임오프를 길게 책정해 준다고 하더라도 노조가 사용자에게 고분고분할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형해화된 노조를 기습적으로 먼저 설립하도록 하고 그 대가로 공짜 월급 혜택을 누리도록 이익을 제공하는 방식은 복수노조 설립이 금지했던 구 노조법 아래에서나 가능했다. 현재는 근로시간을 면제받은 노조 집행부가 사용자의 거수기 노릇한다면, 소속 조합원들은 언제든지 탈퇴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고 활동하는 일이 가능하다. 즉 타임오프를 늘리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예속화’라는 목표 사이의 상관계수 자체가 매우 낮다. 목표달성이 불분명한 수단에 꾸준히 비용을 지출하는 무능한 사용자는 드물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해 타임오프 시간을 늘려줄 것이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순진한 것이다.

또한 현재의 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근로시간면제 한도는 전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동부 고시에는 조합원 숫자에 따른 근로시간면제 한도뿐만 아니라, 근로시간면제자 숫자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예컨대 조합원이 499명이더라도 노동조합은 최대 4명까지만, 그것도 파트타임만으로 근로시간면제자를 지정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뿐만 아니라 노조도 기획, 법규, 노동안전, 조직, 쟁의 준비 등 다양한 기능 내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허울뿐인 조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각 기능별 전담 인력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노조회계 투명성을 위한 감사 업무는 이들 집행인력들과는 별도로 선출해야 한다. 집행인력이 감사하는 것은 감사의 본질에 반한다. 이렇듯 최소 필요인력 수가 많기 때문에 현행 근로시간면제 한도 범위 내에서는 최소한의 조합원 숫자도 충족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해당 조항 위반 이유로 시정조치를 받은 각 사업장 노조는 사용자의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서 요구사항을 관철한 자주적인 노조라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사용자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다투어 얻어낸 자주적인 노조 활동의 결과물이 곧 노동부 고시 기준을 넘는 타임오프와 인원 확보인 것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정부였다면, 근로감독 도중에 노조법 24조 위반 사례가 많다는 현상을 똑같이 목격했더라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근로시간면제 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니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거나, 현행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현실화하는 정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노조를 ‘기득권 카르텔’로 매도하면서 위축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해결방식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노조를 공격할 방법을 찾던 와중에 노조법 24조4항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을 공산이 크다.

결과적으로 노조법 24조4항 위반을 이유로 한 이번 노동부의 공권력 행사는 사용자에게 그간의 노사합의 결과물을 하루아침에 뒤집을 명분을 줄 뿐이며, 그나마 자주성을 가지고 활동하던 노조마저도 위축시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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