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홍준표 기자>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가 소수노조에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은 행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강제하는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서 위법하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공정대표의무는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나 조합원 간에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사용자는 사무실 ‘분할’ 사용을 제안했으나, 법원은 ‘독립적인 사무실’ 제공이 불가능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써야 한다고 명확히 했다.

B기업·교섭대표노조, 사무실 제공 ‘외면’

1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버스업체 B 주식회사와 교섭대표노조인 A노조 산하 지부가 각각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공정대표의무위반시정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지난 12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수노조를 향한 ‘노골적’ 차별이 소송의 발단이 됐다. 서울시 시내버스 회사 18곳과 A노조는 2021년께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산하 지회에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는 등 차별했다. 당시 B기업은 A노조 지부에만 약 12평(42.24제곱미터)의 사무실을 제공했다. 교섭요구노조 확정공고일(2021년 11월9일) 기준 B기업에는 지부 조합원수가 약 444명으로, 지회 조합원(5명)보다 훨씬 많았다.

공공운수노조는 업체들과 A노조가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했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했다. 사무실을 포함해 노조 게시판 사용, 상급단체 임원 취임과 조합활동에서 차별받았다는 것이다. 서울지노위는 ‘사무실 미제공’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이라고 판정했다. 지노위는 “(업체들과 A노조가) 각 지회에 독립적인 공간은 아니더라도 조합활동을 위한 안정적이고 상시적인 사무공간을 제공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나머지 청구사유는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사무실 미제공에 조합원 ‘급감’, 법원 “차별”

중노위도 초심을 유지하자 B기업과 A노조는 ‘사무실 미제공’과 관련해 각각 2022년 7월과 지난해 1월 소송을 냈다. 나머지 회사들은 각 지회와 합의해 소송에 나서진 않았다. B기업측은 “최선을 다해 노조사무실 제공을 위한 노력과 대안을 제시했는데도 지회가 거부했으므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A노조도 “노조사무실 제공을 반대한 적이 없는데도 중노위는 잘못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먼저 B기업 사건에서 재판부는 “회사는 노조사무실을 대여한다”고 정한 단체협약(42조) 규정이 교섭대표노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며 지회에 대한 사무실 미제공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사측은 “소수만 있는 지회에 사무실을 제공할 경우 향후 소수노조가 설립될 때마다 사무실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조가 새로 설립될지도 불분명한데 이를 이유로 사무실 제공을 거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교섭요구노조 확정공고일 당시 지회에 약 5명의 조합원만 남게 된 것은 회사가 지속해서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은 영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회는 2017년 조합원이 약 16명 있었으나 4년 만에 3분의 1로 줄었다.

서울시 시내버스 회사의 소수노조가 노조사무실을 제공받지 못한 것은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시내버스들이 서울역 앞을 운행하는 모습.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서울시 시내버스 회사의 소수노조가 노조사무실을 제공받지 못한 것은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시내버스들이 서울역 앞을 운행하는 모습.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사무실 쪼개기’ 법원 “최후에 사용해야”

노조사무실 ‘쪼개기 사용’ 요구도 질타했다. 사측은 지노위 판정이 나오자 그제야 협의에 나섰는데, 서울 도봉구의 본사 노조사무실을 지부와 분할해 사용할 것을 지회에 요구했다. 지회는 석수영업소에서 본사까지 거리가 멀다며 근로시간 면제 등을 통해 이동시간을 보장해 달라며 외부 임대나 거리가 가까운 온수영업소에 사무실 제공을 요청했다. 법원은 본사 사무실(약 12평)이 좁아 두 노조가 나눠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독립적인 사무실 제공’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사무실을 분할 사용하는 방안은 최후 방법으로 제시돼야 한다”며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온수영업소 일부 공간을 사무실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 회사가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간 확보를 위해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소수노조에 대한 사무실 제공은 원천적으로 차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A노조가 낸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원고는 중노위가 권고한 화해조서에 서명하지 않는 등 지회에 사무실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비협조적이었다”며 “교섭대표노조의 공정대표의무는 소수노조가 받는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적극적 의무까지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단체협약 이행은 사용자와 지회 사이의 문제일 뿐이라는 A노조 주장에 대해서도 “원고가 단체협약 이행과정을 준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공운수노조를 대리한 이진욱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사무실 분할 사용 방안은 독립적인 사무실을 제공할 방법이 없는 경우 최후적인 방법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명시한 점에 의미가 있다”며 “법원은 추가적인 공간 확보를 위해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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