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기간 연장을 직접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기존보다 까다로운 내용을 법안 논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아직도 민생현장에는 애타게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법안들이 많이 잠자고 있다”며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2년 연장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들었다.

그는 “당장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면서 현장의 영세한 기업들은 살얼음판 위로 떠밀려 올라가는 심정이라고 한다”며 “정부가 취약 분야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경제단체도 마지막 유예 요청임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국회는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근로자의 안전이 중요함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면서도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처벌은 우리 헌법 원칙상 분명한 책임주의에 입각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며 “중소기업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할 때 시간을 더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중대재해 감소대책 발표했어야”

윤 대통령의 발언은 민주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민주당은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논의 조건을 더욱 구체적으로 밝혔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과 산업재해예방 직접예산을 1조2천억원에서 2조원으로 증액하고, 이를 올해 집행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법안처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를 집중 관리하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관련 예산 및 조직 확보방안, 출범 일정을 포함한 구체적 계획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50명 미만 사업장 산업재해 예방 직접 예산 1조2천억원을 2조원 이상으로 확보하고, 올해 집행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라”고 밝혔다. 2조원이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오늘 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적용유예법안 처리를 요구할 게 아니라 행정부 수장으로 공식 사과를 하고 산재 사망사고가 집중된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발표해야 했다”며 “전체 중대재해 사망자 중 60%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임에도 영세기업들이 고금리·고물가로 견디기 힘든 상황만을 앞세워 적용유예 법안 처리를 요구하는 대통령의 인식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민주당이 요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전면적용에 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와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을 정부에 요구해 왔다. 2년 법 적용 추가유예 이후에는 다시 법 적용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경제단체의 약속을 촉구했다. 당정은 사과와 산업안전보건청 설치요구에는 답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 “대통령이 국민 협박하나”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대통령이 나서서 중소기업 존속을 거론하면서 피해가 고스란히 노동자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거의 협박 수준의 발언을 했다”며 “노동자들이 죽어서 유지되는 기업이라면 존속할 이유가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처벌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기피해 온 기업들이 상당수였다”며 “이제 더 늦출 수 없다. 27일부터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시행이 마치 영세·중소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며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산업재해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은 오히려 중소기업들에 더 시급한 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을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민주노총은 “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유예 연장 논의를 즉각 중단하지 않고, 조건부 합의를 운운하며 지지부진하게 논의를 이어 가고 있는데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의 공범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부터 일관되게 중대재해처벌법을 흔들었다”며 “영세기업은 핑계고,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내팽개치는 대통령의 무자비함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3년이나 유예했는데) 정부가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법 적용 시기가 되자 이제 와 기업을 핑계로 늦춰 달라고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며, 방학 숙제 미루다 개학 늦춰 달라는 요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윤정·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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