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연차휴가였는데 판결 결과를 알아보러 사무실에 연락하려던 참이었다. 문자메시지를 읽고서 안도했다. 혹시나 했는데 다행이다. 1심 판결을 기다릴 때보다 더 긴장이 됐다. 사측이 1심에서 하지 않은 주장까지 추가해 다툰 터라 도대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재판부가 제대로 인정할지 걱정이었다. 소송대리인인 내가 이랬으니 당사자들은 오죽했을까. 피고 사측 준비서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나는 원고 대표 임○○에게 이러 저런 증거 자료를 수시로 요청했는데 그는 대표로서 성실하게 자료 준비를 해줬다. 그런 그도 한 번은 1심 판결이 뒤집힐까 봐 걱정이라고,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내게 묻기까지 했다. 이번 문자 메시지는 바로 그가 보낸 것이었다.

2. 현대모비스 통상임금사건이다. 원고들은 퇴직자였다. 2019년 현대차 노사는 통상임금 문제에 합의해 대표소송을 취하하고 재직자들에게 일정한 합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현대차에서 이미 퇴직한 자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 그 노사합의서는 재직자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퇴직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현대모비스 노사는 통상임금 문제에 관한 현대차 결과를 따르기로 합의했던 터라 현대모비스에도 마찬가지로 퇴직자들에게는 합의금이 지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퇴직자들이 소송한 것이다. 통상임금 노사합의로 재직자들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면서 퇴직자들은 지급하지 않는다니,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주장해 대표소송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려왔던 것은 재직자나 퇴직자나 마찬가지인데 노사합의로 다르게 취급하다니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래서 퇴직자들은 소송으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으로 인정받아 지급받지 못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등 법정수당 및 퇴직금을 지급받고자 통상임금소송을 제기해서 진행했다.

3. 2012년 현대차 노사는 대표자들을 선정해 소송하고 대법원 확정판결 결과를 전 직원에게 동일 적용하는 내용의 대표소송에 관한 합의를 하고, 2013년 나는 원고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으로 그 소장을 작성해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대표소송은 노동자측의 승리로만 진행되지 못했다. 2000년 초 현대정공(5공장), 현대차써비스, 구 현대차 등 3사 통합으로 출범한 현대차는 구 현대차 소속이던 노동자의 경우 15일 미만 근무 시 지급 제외하는 상여금 지급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문제가 됐다. 1심 서울중앙지법은 물론 항소심 서울고법도 고정성이 결여됐다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현대정공(5공장) 소속 노동자의 경우에는 통합 이후 현대차 조건을 적용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인정돼 법원은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다만 이러한 합의가 없었고, 15일 미만 근로시 지급 제외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던 현대차써비스 소속 노동자 경우는 상여금은 고정성이 인정돼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이러한 하급심 판결에 불복해서 원·피고 모두 상고한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던 중 통상임금 노사합의로 취하됐다.

그런데 현대정공에서 개명한 현대모비스는 현대차로 통합된 것도 아니라서 현대차 지급 제외 조건이 적용될 이유가 없었다. 만약 현대차 대표소송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소송했더라면 지급받을 수 있었다. 현대모비스 퇴직자들은 현대차 대표소송 결과를 동일 적용하기로 한 노사합의를 믿고 기다렸는데, 졸지에 노사합의로 대표소송이 취하되고 재직자와 달리 합의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대표소송 결과를 적용받지도 못하고, 합의금을 지급받지도 못하게 됐으니 부당하다 청구해야 했고, 법적으로 부당하다고 인정돼야 했다. 하지만 피고 사측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2010년 1월분부터 청구했던 것인데, 피고는 소장을 제출하기 3년 이전의 청구는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도과해 각하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현대모비스에도 2015년 임단협에서 현대차 임금체계를 적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했으니 현대차 지급기준에 적용돼 고정성이 결여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4. 원고들은 2012년 9월 현대차 노사의 대표소송 합의를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한 피고 노사의 합의하고, 그 뒤에서 같은 취지로 계속 노사합의 했기에 그 결과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이와 같은 노사합의를 피고 사측은 원고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치 않다고 믿게 했다. 원고들이 소송을 통해 청구하자 소멸시효를 도과했다고 피고 사측이 주장하고 나온 것이니 그 주장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돼선 안 된다. 사측은 2019년 10월24일 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채권은 시효가 완성돼 소멸했다는 주장이고, 퇴직자인 원고들은 사측이 노사합의를 통해 대표소송 결과를 동일 적용할 거라고 믿게 했으니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으로 소 제기 3년 전부터가 아니라 청구한 대로 2010년 1월분부터 모두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소멸시효에 관한 사측 항변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며 원고들 주장을 인정했다.

그리고, 현대차 임금체계를 적용하기로 했다는 노사합의를 내세워 2016년부터 현대차 상여금 지급기준이 적용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게 됐다는 사측 주장에는 상여금에 현대차 지급기준을 적용하기로 노사합의한 것이 아니라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하는 현대차 노사합의가 나오면 그 합의에 따른 현대차 임금체계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라고 나는 당시 임단협에 참여했던 현대차지부장 등 노조간부의 진술을 받아 제출하면서 반박했다. 법원은 자세하게 사측 주장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원고들의 반박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현대차 등 노조간부의 진술서 확보를 위해서 원고 대표가 많은 노력을 했다.

이상과 같이 법원은 피고 사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원고들 소송대리인으로서 내가 했던 원고측 주장을 인정했던 것이다.

5. 원고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도 타당하고 당연한 판결일 것이다. 2012년 대표소송 합의에 따라 대표소송 결과를 적용받는 것이 타당했고, 2019년 통상임금 문제에 관해 합의금을 지급하는 노사합의에 따라 대표소송을 취하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퇴직자에게도 합의금을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2019년 노사합의는 퇴직자인 원고들을 저버렸다.

바라보던 대표소송은 없어지고, 합의금 지급도 없었다. 대법원에 있던 대표소송은 노조의 주도로 대표소송 원고들 모두가 소를 취하하면서 사라졌고, 재직자에게만 지급하기로 하면서 합의금도 지급받을 수 없었다. 노사합의를 믿고 기다렸으나, 노사합의는 퇴직자를 배신했다. 법원 판결이 타당하고 당연한 만큼 믿고 기다렸던 데 대한 배신감은 크다.

2019년 통상임금 문제에 관한 노사합의 이후에 현대모비스는 물론 현대차의 퇴직자들이 잇달아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에 현대모비스 퇴직자인 원고들은 승소했지만, 그 퇴직자 소송에서 원고들이 승소한 것은 아니다. 지급 제외 조건이 있는 구 현대차 소속이었던 퇴직자의 경우 법원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노사합의는 이렇게 노동자의 임금권리로 아직 인정되고 있지 않는 경우에 해야 한다. 이미 노동자의 권리로 인정되는 것을 두고서 노사합의한다는 것은 기존 권리를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2019년 현대차에서 통상임금 문제에 관한 노사합의는 의미 있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가 있다. 지급 제외 조건의 상여금에 관해서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합의를 하고, 합의금까지 지급받기로 한 것이니 말이다. 현대차에서 지급 제외 조건이 적용돼 상여금을 지급받고 있던 노동자에게는 분명히 그러하다. 이것이 기아, 현대제철 등 이미 상여금이 법적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함에도 노사합의한 사업장들에 대해 현대차 노사합의를 평가해줄 만한 점이다.

하지만 퇴직자를 제외한 것은 유감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처럼 사측의 소멸시효 항변을 포함한 온갖 주장을 반박해야 소송을 통해 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지급 제외 조건이 없는 현대모비스 소속이었던 퇴직자였으니 이런 판결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고, 그렇지 않은 퇴직자의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다. 수많은 현대차 퇴직 노동자들은 노사합의에 서명한 노조를 원망했을 것이다. 소송을 통해서 또다시 노조를 원망했을지 모른다. 변호사로서 소송에 이겨서 감사하는 말을 듣는 것도 좋지만, 이 나라에서 퇴직자들이 노조를 원망하지 않고 고맙게 여기는 노사합의를 보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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