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전설(legend)의 사전적 의미는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요즘엔 어떤 일이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이나 성과를 냈을 경우 오랫동안 그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전설이라 부른다. 한국축구의 전설 차범근, 한국야구의 전설 선동렬, 한국영화의 전설 신성일 등이 대표적이다. 전설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싸움의 전설이다. 혼자 17명과 싸워서 이겼다는 내용이지만 ‘뻥(허풍)’이 다분하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전설이라고 부를 일이 생겼다. 물론 싸움은 아니다. 17명보다 280배 많은 4천829대 1의 전설이다. 경찰이 역대급 특진을 내걸고 지난해 8월부터 250일간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불법 건설현장 특별단속’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수사로 경찰청은 총 4천829명의 건설노동자를 송치하고 14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건폭’이라고 언급한 것이 건설노조와 건설노동자를 때려잡는 시발점이 되었다. 수사 초반 50명이던 특진 규모는 점점 커지더니 90명까지 확대됐다. 현직 경찰들이 전국의 건설현장을 밤낮없이 단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4천829명의 노동자를 송치하고 148명을 구속시키는 동안 사용자는 단 한 명도 구속되거나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견된 결과다. 지난해 노조와 시민단체가 노조 탄압용 편파 수사라고 비판하자 경찰청은 노사 구분 없이 불법행위를 엄단할 테니 나중에 결과를 보고 판단하라고 호언장담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뚜껑을 열어 보니 경찰청의 그런 호기는 공수표에 불과했다.

건설사들의 불법행위는 언론을 통해 흔히 접한다. 하지만 경찰이 건설사를 수사해 처벌하거나 구속했다는 소식을 접하기 어렵다. 2021년 광주 화정동 아파트 외벽 붕괴로 6명이 사망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HDC현대산업개발의 누구도 처벌은 받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로 불법 설계와 부실시공이 드러났지만 GS건설의 책임자 구속이나 처벌은 없었다. 철근 누락이 발견된 LH도 재시공한다는 말만 나왔을 뿐이다. 공사기간을 단축하려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도 건설사 시멘트 타설 장면은 일상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설령 건설사가 운(?) 나쁘게 적발돼도 과태료 부과에 불과하다. 건설사에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 쉬운 것은 없지만 정부는 그 방법도 떠먹여 준다. 한술 더 떠 최근 건설경기가 악화되자 정부는 평균 용적률을 높이고,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등 건설규제를 완화했다. 더군다나 중요산업시설로 분류해 이주노동자 고용이 불가능한 플랜트건설 분야도 외국인 채용을 허용할 방침이다. 비용 절감과 수익 극대화를 위한 건설사의 오랜 숙원사업들이다. 최근에는 건설사들의 미분양 주택 해소를 위해 구매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더니 빚을 갚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한 태영건설에 국민 세금을 투입할 모양이다. 하루에 한 명씩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죽어도, 노조원이란 이유로 현장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정부는 건설사들의 온갖 애로사항에는 즉각 반응한다. 마치 정부가 건설사 소원 수리기관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외쳤던 ‘공정과 상식’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다. 가족이나 측근의 비리나 불법엔 관대하지만 눈엣가시에는 가차 없이 ‘공정과 상식’이라고 포장해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구속기소로 입막음한다. 오죽했으면 윤석열 정부를 ‘압구정(압수수색·구속영장·정쟁) 정권’이라고 부를까. 윤석열 정부 들어 건설사에는 관대함과 봐주기 끝판왕을 선사하고, 노조에는 혐오감과 불법·비리 낙인찍기에 바쁘다. 8개월 넘은 경찰의 건설노조 수사 결과가 증명한다. 그래서 ‘4천829대 0’의 성과를 낸 이번 수사 결과는 가히 경찰이 이루어낸 수사의 전설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런 전설이라면 백 번, 천 번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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