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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전 걸린 진폐증 후유증으로 폐결핵이 발병해 숨진 80대 광부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진폐증보다는 기존 질병과 코로나19 감염으로 폐결핵이 걸렸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미 과거 폐결핵을 앓은 전력이 있어 코로나19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1970년대 8년간 석탄 캐다 진폐증 발병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 부장판사)는 강원 삼척의 광부로 일하다 사망한 A(사망 당시 86세)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진폐유족연금 및 장례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이 항소를 포기해 지난 5일 1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사건은 무려 5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1971년 3월부터 1979년 5월까지 8년여간 삼척의 한 광업소에서 채탄부로 일했다. 채탄 후유증은 6년 뒤 나타났다. 1985년 최초로 진폐증 진단을 받은 후 2001년 장해등급 판정이 나왔고, 2020년에는 요양 결정까지 받았다.

A씨는 이 무렵 폐결핵이 걸려 약 3개월간 병원에 다녀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2년 3월 코로나19까지 걸렸다. 당시 국내 코로나 신규확진자수는 19만8천여명으로, 세계 2위에 오를 만큼 확산세가 강했다. A씨는 이후 호흡장애와 기침·가래가 심해져 그해 5월부터 입원했지만, 증세가 나빠지며 한 달 뒤인 2022년 6월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A씨 아내는 “폐결핵과 진폐증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고령으로 인한 전신쇠약과 고혈압·당뇨 등 평소 지병과 함께 코로나19 감염으로 증상이 악화한 것이 사망에 더 큰 영향을 줬다는 취지로 불승인했다. 유족은 지난해 1월 소송을 냈다. 유족측은 “오랜 기간 지속된 진폐증으로 인한 요양이 심폐기능 저하 등과 복합적으로 작용해 폐결핵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법원 “폐결핵 재발, 코로나 영향 아냐”

법원은 공단 판정을 뒤집고 A씨 손을 들어줬다. 진폐증이 계속 심해지며 합병증인 폐결핵을 일으켰다고 추정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폐결핵 진단을 받고 치료하다가 다시 재발했다”며 “2018년에도 호흡장애로 입원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의무기록에도 진폐증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A씨는 2022년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폐 섬유화 현상 의심 진단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19 감염이 사망 원인이라는 공단 주장도 일축했다. 재판부는 “고인에게 당뇨나 고혈압이 있었으나 심하지 않았고, 전신쇠약 또한 연령을 고려할 때 심하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고인은 폐결핵이 재발한 것으로 보이는 바, 코로나19로 확진됐다는 것이 폐결핵 발병·악화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도 “고인의 사망은 진폐증과 상당인과관계를 넘어서는 수준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소견을 냈다.

재판부는 “설령 기저질환이 상병 발병·악화에 영향을 줬더라도 진폐증으로 인한 심폐기능 저하 등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며 기저질환만이 사망 원인이라고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족을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진폐증의 합병증인 호흡기계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공단이 재해자들의 고령과 지병을 이유로 업무상 재해를 엄격하게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며 “진폐 재해근로자 대부분이 이미 상당히 고령이고 다양한 지병에 시달리는 점을 고려하면 공단은 진폐 합병증 판단에 관해 법원 판결을 존중해 조기에 승인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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