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10년도 더 된 일이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간장을 사러 집 근처 할인마트에 갔다. 슈퍼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했다. 뿌듯한 마음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뛰듯 걸었다. 집에 다다를 때쯤 사지 않은 물품이 떠올랐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슈퍼에서 살 요량으로 집 앞 슈퍼에 들렀다. 역시나 비쌌다. 빈손으로 되돌아 나오자 주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비닐봉지 안에 든 간장을 꺼내 보라고 했다. 난생처음 도둑 누명을 썼다.

당시 감정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짐작도 어려울 것이다. 결백했지만 ‘결백을 입증하지 못해서 도둑이 되면 어쩌지’ 가슴이 두근댔다. 그때 느꼈던 수치심과 모멸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의 일을 떠올린 것은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로 몰린 김민지(가명·40세)씨의 사례를 취재한 뒤다. 그는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실업급여 부정수급액을 반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실업급여 지급이 종료된 지 1년3개월 만이었다. 실업급여 기간이 종료되기 나흘 전 계약직 공공근로 일을 시작했는데, 상용직이 아닌 일용직으로 잘못 신고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씨는 해명하기 위해 노동청을 찾았지만 사실관계를 따져 묻는 조사관의 질문에 변명하듯 답해야 하는 상황에 자괴감을 느꼈다.

실업급여 수급 중 일용 노동을 착실히 신고해 왔고, “남의 돈 백 원 하나 공짜로 안 받아 봤다” “아이에게 부끄러운 엄마로 살 생각 없다”는 말로 결백함을 호소했지만 경직된 법은 김씨의 말을 튕겨 냈다. 그는 이번 일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실업급여를 받게 되면 일용직이든 뭐든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정은 지난해 7월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실업급여 부정수급에 대한 특별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 등 제도 변경은 당시 나온 ‘샤넬 선글라스’ ‘시럽급여’ 발언에 역풍을 맞고 주춤하고 있지만, 실업급여 특별점검은 예정대로 진행 중이다. 노동부는 적발한 부정수급 숫자와 사례를 주기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민지씨처럼 악의가 없는 부정수급 사례도 적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 ㄱ씨의 사례도 비슷하다. 그는 실업급여 수급기간 종료 9일 전 주 1회 6시간씩 알바를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됐다. 실업급여 수급 중 주 15시간 미만의 근로는 근로 사실을 신고하면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실업급여 지급기간 종료 전 시작한 알바를 1년여간 지속해 일했다는 이유에서 부정수급이 됐다. 3개월 초과해 일했으니, 상용직으로 취업한 것이고 이를 취업으로 신고하지 않았으니 부정수급이란 것이다. 결국 당시 알바로 얻은 소득보다도 많은 돈을 토해내라는 행정처분을 받았다. 그는 “알바도 상용근로자로 취업인정되는 거라면, 구직급여보다 적은 근로소득을 선택하는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억울해 했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높아 사람들이 일하려 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으로 혈세가 세고 있다’며 제도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 정책을 함께 보면 김민지씨 등의 사례는 어딘가 아이러니하다. 실업급여 수급 중 수급액보다 적은 돈이라도 벌려고 애썼던 이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관리·감독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악의 없는 부정수급에 대해 실질 부정수급액 보다도 많은 액수를 상환하게 하는 등 엄격한 법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부는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 제도로 행정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도둑 누명을 썼던 그날처럼, 부정수급자로 몰린 사람들은 자신을 범죄자로 의심하며 사실관계를 꼬치꼬치 캐묻는 ‘심판관’ 앞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결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드는 일이 아니다”며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민지씨는 이의신청을 해 보라는 권유에 고민하겠다면서도 “지금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았다. 자괴감이 커서 나라를 상대로 (싸워서) 버틸 힘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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