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청사 전경.

한국교육방송(EBS)이 약 9년간 일한 프리랜서 아나운서와의 계약을 종료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KBS 아나운서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등 방송계의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관행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그런데도 방송국이 거액의 소송비를 들여 소송을 이어간다는 비판이 나온다.

8년간 계약서도 없이 일하다 계약 체결 1년 만에 해고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 부장판사)는 EBS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EBS는 1심에 불복해 지난달 27일 항소했다.

아나운서 A씨는 2012년 4월 입사해 ‘EBS 저녁뉴스’를 진행했다. 그런데 EBS는 약 8년간 계약서조차 쓰지 않다가 2020년 8월에서야 A씨와 2021년 2월까지 프리랜서 출연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5개월을 기간으로 한 차례 계약을 갱신했는데, EBS는 2021년 8월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며 출연계약을 종료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노위는 모두 A씨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EBS는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해 소송을 이어 갔다. EBS측은 “A씨와 민법상 위임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업무 수행 과정에서 별다른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설령 근로자로 보더라도 A씨의 1주 근로시간은 15시간에 미달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계약직이라고 강조했다.

A씨 사안은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2022년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EBS 아나운서 2명이 임신했을 때 해고를 통보받은 점에 대해 김유열 EBS 사장에게 질의했다. 김 사장은 “당사자들이 임신으로 출연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들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경영상 고려할 부분이 많아 로펌을 선임했다고 주장했다.

뉴스 멘트 관여, 법원 “방송사에 구속”

법원은 A씨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중노위 판단을 유지했다.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방송시간이나 편수에 A씨가 구속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방송사는 2시에 사전녹화를 실시할 예정임을 전제로 참석 가능 여부를 물은 뒤 일방적으로 시간을 2시30분으로 변경했다가 다시 2시로 변경했다”며 “방송사가 필요에 따라 사전녹화 일정을 결정한 뒤 통보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BS가 뉴스 진행에 깊숙이 관여한 부분도 판단 근거가 됐다. PD는 A씨에게 뉴스 클로징 멘트를 금지하거나 특정 인터뷰를 지시하는 등 진행 방식을 지시했다. 재판부는 “방송사 지시에 따라 뉴스 클로징 멘트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방송사와 무관하게 근무 개시 시간이나 근무장소를 A씨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고 봤다.

업무 계속성과 전속성도 인정됐다. A씨가 9년여간 EBS에서만 일했으므로, 각종 외부행사에 참여한 사실이 있더라도 뉴스 업무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겸직’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A씨가 받은 보수도 근로 대가라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입사한 때로부터 2년이 경과했음이 명백한 2014년 4월2일부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한다”며 “해고 성격을 갖는 출연계약을 종료하면서 서면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부당해고”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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