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훈 공인노무사

* 이 글은 영화 <괴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괴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그래서 누군가를 괴물이라 규정하는 순간, 괴물로 명명된 존재는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세계에 발붙일 수 없게 된다. “괴물이 누구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은 영화 바깥에서, 즉 안전한 거리에서 ‘괴물 찾기’를 즐기던 관객을 기어코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 진짜 괴물이 누군지 따져 묻는 영화다. 이를 위해 영화는 등장인물 셋의 각기 다른 시점으로 사건을 풀어내는 독특한 3부 구성 형태를 취한다.

1부의 싱글맘 사오리의 시점에서는 아들 미나토에게 폭력을 가한 호리 선생과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교장이 괴물이다. 무릎 꿇고 반성해도 모자란 호리 선생은 사오리 앞에서 고개를 젖히고 사탕을 입에 넣는다. 교장은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반응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2부의 호리 선생의 시점에서는 학교폭력 가해자로 보이는 미나토와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들, 거짓 사과를 강요하는 교장, 그리고 누구보다 민원 학부모 사오리가 괴물이다. 1부에서 2부로 시점이 바뀌며 피해자인 줄 알았던 사오리는 가해자처럼 보이고, 가해자처럼 보이던 호리는 피해자처럼 보인다.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불편도 잠시, 관객들은 빠른 ‘손절’과 함께 새로운 ‘괴물 찾기’로 선회한다.

이런 모습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직장내 괴롭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급격한 이동을 떠올리게 한다. 땅콩회항이나 양진호 사건 등 엽기적인 갑질 사건이 화제가 되며 2019년 근로기준법상 직장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시행된 이후, 괴롭힘 가해자를 매섭게 단죄하던 분위기는 불과 몇 년 새 피해자의 탈을 쓴 이른바 오피스빌런에 대한 성토로 옮겨 가는 모양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잘못돼 억울한 사람이 가해자로 몰리고 조직이 마비됐단다. 괴롭힘 인정 요건의 개량화가 필요하단 지적도 쏟아진다. “괴물이 누구게?”

‘이러이러한 신고자도 있다니까, 말이 돼?’ ‘야야야, 저러저러한 자칭 피해자도 있다고, 이게 정상이야?’ 들어보면 분명 말이 안 되고 정상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례는 무수한 사례들 중 일부이고, 심지어 그 사례에서도 도드라진 한 단면에 불과하다. ‘괴물 찾기’ 놀이를 계속하면 아마도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산재 카르텔이나 나이롱환자도 틀림없이 찾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일부 산재 카르텔이나 나이롱환자의 팩트를 찾았다고 해서 현행 산재보상 제도 전체가 문제라는 주장은 당연히 옳지 않다. 그런 주장은 오류론에서 찾자면 ‘허수아비 때리기의 오류’에 가깝다. 오피스빌런도 허수아비도 때리기 편한 괴물의 다른 이름들이다.

영화는 3부 미나토의 시점에 이르러 감춰진 진실을 드러낸다. 미나토는 동성 친구 요리를 좋아한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요리는 아버지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하고 있고, 급우들에게 괴롭힘도 당하고 있다. 미나토는 괴롭힘을 당하는 요리를 돕지 못하고 같이 괴롭혀야 하는 처지다. 남자의 몸을 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요리와 미나토. 요리를 좋아하지만 학교에서는 요리를 괴롭히는 쪽에 서야 하는 미나토. 미나토가 내뱉는 말들은 이때부터 전부 혼잣말 아니면 거짓말이어야 했다. 엄마에게 호리 선생이 자신을 때렸다고 거짓말해 1부와 2부의 사달이 일어났으므로, ‘괴물 찾기’의 종착지는 미나토여야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 진실 앞에 일종의 판단중지 상태에 빠지고 만다. 미나토와 요리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그 감정을 괴물로 내면화하게 한 건 결국 우리 같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괴물이 누구게?” 관객들은 비로소 그토록 찾던 괴물이 자신일 수 있음을 직감한다.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규범을 법이라 한다. 법의 이런 속성은 어쩐지 “선을 넘어 찻길로 걸으면 지옥에 간다”는 엄마 사오리의 경고나, 책에서 오탈자 찾기를 즐기는 선생 호리의 악취미와 닮아 있는 것도 같다.

노동법을 파는 연재의 첫 글을 이 영화로 시작한 건, 앞으로 내가 쓸 글들이 ‘괴물 찾기’에 몰두하는 우를 범하진 말자는 다짐 때문이기도 하다. 응원을 부탁한다.

공인노무사 (libero1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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