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나는 플랫폼 노동을 비롯해 변화하는 일하는 방식을 연구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일터의 특징 중 하나는 물리적인 공간과 보이지 않는 기술이 뒤얽혀 있고, 그 결과 일하는 방식과 규범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앱을 활용해 일하는 플랫폼 노동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칼럼의 첫 번째 글인 만큼 일터의 변화가 제기하는 몇 가지 주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공지능(AI)·로봇·알고리즘과 같은 기술이 일터에 도입되면서 ‘알고리즘은 새로운 보스인가’ ‘로봇은 새로운 동료인가’와 같은 질문을 자주 듣게 된다. 이러한 표현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역할과 위치에 대입해 기술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세계에서 일을 지시하는 주체, 함께 일을 하는 주체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해 방식은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다만 알고리즘·로봇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명확한 데 반해 그 위치나 책임은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다.

식당에서 서빙하고 조리하는 로봇을 마주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어떤 식당에서는 로봇이 혼자 다니지만, 어떤 곳은 직원이 서빙로봇과 함께 와서 접시를 옮겨 준다. 이때 직원은 서빙로봇과 묶여서 일하며 로봇의 움직임을 책임지는 사람인가. 아니면 서빙로봇과 별도로 움직이는 사람인가. 만일 직원이 서빙로봇과 함께 움직이던 중 로봇이 손님과 부딪히는 일이 발생했다면, 로봇이 손님에게 사과해야 할까 직원이 해야 할까. 로봇이 사과한다면 손님은 그 사과를 받아들일까. 이러한 의문은 로봇이나 기술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상대로서 도덕적 책임,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는 기술의 작동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명하는 것, 법적인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논의다. 일상적 상호작용의 상대로 기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기술에 둘러싸인 일터에서 생각해 봐야 할 또 다른 주제는 숙련이다. 자동화 기술이 도입될수록, 업무가 단순해지면서 노동자의 숙련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업무의 표준화와 탈숙련화 경향은 이미 여러 산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동화 기술로 둘러싸인 일터에서는 새로운 노동이 필요해지기도 한다. 많은 연구자는 자동화 기술이 도입될 때, 기계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문서 디지털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사무직 노동자들은 기존의 종이 문서를 스캔하거나 타이핑을 해서 디지털화하는 일을 담당했다. 키오스크가 도입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직원들은 키오스크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을 돕기도 한다. 자동화 기술과 기기, 사람이 뒤섞여 일하는 일터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끊어지는 부분을 이어 주는 연결노동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연결노동이 비가시화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스템 연결과 작동에 대한 직관적 이해, 이것을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은 세대와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다. 특정 직무에 특화된 역량이 아닐 뿐이다. 범용 역량이라고 해서 모두가 갖춘 역량이라고 지레짐작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역량을 기본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 나이·계층별로 존재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 능력의 격차(디지털 디바이드)가 노동시장에서의 격차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능력이 어떻게 일터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그것의 숙련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신기술 등장과 함께 고려해야 할 지점을 이야기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오래된 문제들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플랫폼 노동과 관련해 논의되는 법적 지위, 규제가 전혀 없는 노동조건 등의 많은 쟁점은 90년대 이후부터 지속돼 온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술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고, 기술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동화 기술이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실업이나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정책의 영역이다. 기술에 대한 장밋빛 혹은 음울한 전망이 교차하고, 일터가 변화하는 와중에도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래서 시민들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는 여전히 핵심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sumin_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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