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23. 12. 21. 선고 2022누56601 판결

1. 들어가며

서희원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 서희원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혹자는 이 사건 판결을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첫 번째 법원 판결’로 평가한다. 온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물론 타다 사업에 모바일 앱이 활용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프리랜서 타다 기사들이 디지털 플랫폼 산업의 발현으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 종사자의 전형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단지 작업 수행 과정에서 앱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플랫폼 종사자’라는, 그 의미도 용례도 아직 일의적으로 확립되지 아니한 이름표를 섣불리 붙여버리는 것은, 이들이 사실 기존의 노동시장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호출형 노동자’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노무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가려버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 사건 1심 법원은 타다 기사가 ‘플랫폼 종사자’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고, 이들이 마치 미증유의 특수한 존재인 것처럼 전제했다. 그래서 사용종속관계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인정하고도, “드러난 사실관계와 같이 업무상 지휘·감독을 할 계약상의 권리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거나, “사업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사업구조였다”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근로자성을 부인하였다. 판결문 말미에는 심지어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보호는 별도의 입법 또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동구조의 변화와 사용자의 책임 회피 의도 강화가 맞물려 양산된 이들 ‘가장 자영인’을 보호하기 위해 법원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역할을 스스로 방기하는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 사족까지 덧붙인 것이다.

항소심 법원은 이러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참가인이 원고 주식회사 쏘카의 근로자임을 전제로 하는 이 사건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 대상판결의 주요 요지

대상판결은 먼저 참가인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참가인의 업무 내용이 기본적으로 타다 서비스 운영자가 타다 앱 등에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정해진 점 △참가인이 노무제공 과정에서 타다 앱 등을 통해 업무수행방식, 근태관리, 복장, 고객응대, 근무실적 평가 등 업무 관련 사항 대부분에 관해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은 점 △근무수락 여부·근무시간·근무장소에 관해 참가인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었다고 볼 수 없고, 근무시간 및 장소를 지정하는 최종적인 권한이 타다 서비스 운영자에게 있었던 점 △근로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이 인정되는 점 △참가인이 제3자를 고용해 용역을 대행하게 하거나, 노무제공을 통한 추가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등 사업자적 징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점 △원고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고 있는 파견 기사와 참가인과 같은 프리랜서 기사가 수행한 업무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점을 근로자성 인정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한 다음 대상판결은 원고 회사의 사용자성에 관한 판단으로 나아갔는데, 타다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실질적으로 참가인을 지휘·감독하며 참가인으로부터 근로를 제공받아 온 원고를 참가인의 사용자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3. 대상판결의 의의

가. 단기간·시간제·호출형 노동자의 근기법상 근로자성 판단에 일응의 기준 제시

1) 이 사건에서 원고는 참가인이 프리랜서 기사로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운전용역 제공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했고, 특정한 날에 운전용역을 제공하도록 원고가 강제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사정이 참가인의 근로자성을 부정할 핵심 징표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1심 판결 역시 이러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인 바 있다.

대상판결은 브이씨엔씨가 프리랜서 기사들로부터 배차신청을 받은 후 차량 배차를 확정하는 방식을 취하였던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사실만을 근거로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정할 최종적인 권한이 참가인에게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근무신청을 하지 않을 선택권’이 참가인에게 유보돼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최종적으로는 브이씨엔씨가 참가인에게 타다 차량을 배차해 줘야만 노무를 제공할 수 있었던 바, 진정으로 자발적 선택에 따른 용역 제공을 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는 대법원이 최근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을 인정(대법원 2023. 8. 18. 선고 2019다252004 판결)하며 채택한 논리와 같다. 대법원은 아이돌보미들에게 원치 않는 조건의 가정을 배정받지 않을 ‘선택권’이 유보돼 있었다 하더라도, 모종의 신청절차를 거친 후 근무시간, 근무장소를 지정하는 ‘최종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사용자(서비스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정이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맞춰 근무하는 통상의 정규직 근로자와 달리 노무제공의 시간과 장소가 사전에 확정적으로 정해지지 않고 고객의 수요에 따라, 혹은 노무제공자의 형식적인 ‘신청’ 절차를 거쳐 유동적으로 정해지는 일자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호출형 노동자에게 유보돼 있는 것으로 보이는 형식적인 ‘선택권’에 집중하기보다, 참가인의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보유한 주체가 누구인지, 배차신청을 한 근무시간·근무일수 등에 따라 처우를 달리하는 등 참가인의 계속적인 운행을 유인한 주체가 누구인지에 주목했다. 결국 참가인에게 근무 여부, 근무시간 등에 관한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 이를 참가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이처럼 대상판결은 변화하는 노동 현실을 인식하고, 기존의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근로자성 판단 표지에 대한 해석을 보다 유연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 대상판결은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시간제 근로자의 특성을 고려했다. 시간제 근로자의 경우 특정 사용자에게 전속돼 있지 않은 채 겸업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겸업이 가능했다는 사실만으로 참가인의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하였다.

근로제공 관계가 단속적인 시간제 근로자 역시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시간제 근로자의 ‘전속성’ 표지를 판단함에 있어 일응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나. 복잡다단한 계약구조 뒤에 숨은 ‘진짜 사용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낸 판결

원고는 ‘자동차임대업에 기사를 알선하는 방식’으로 타다 사업의 외관을 형성해 여객자동차 운사업법(여객자동차법) 위반 소지를 피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협력업체들이 끼어 있는 복잡한 계약구조가 형성됐다. 이에 △인력공급을 담당한 주체(이 사건 헤럴드에이치알과 같은 협력업체)와 △타다 앱 개발·운영 및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제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한 주체(원고의 자회사인 브이씨엔씨), △타다 사업의 주체이자 이를 통한 이윤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모두 부담한 주체(원고)가 각기 분리돼 있었다.

대상판결은 이들 각 주체의 역할을 준별해 복잡한 계약구조 뒤에 숨은 진짜 사용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냈다. 협력업체는 업무내용도 결정할 수 없고 독자적인 노무관리도 불가한 단순 인력공급업체에 불과했다는 점, 브이씨엔씨가 타다 앱을 운영하며 시행한 타다 기사에 대한 상당한 지휘·감독은 결국 타다 사업의 주체인 원고를 대행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다.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 제척기간 준수 여부 판단의 기준 제시

다수 당사자가 복잡한 계약관계로 연결된 사건에서,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 사건의 신청인(근로자)이 피신청인을 잘못 지정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대상판결은 부당해고를 신속·간이하게 구제해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제도의 취지를 깊이 고려해 피신청인 변경 시점이 아닌 최초 구제신청 시점을 기준으로 제척기간 준수 여부를 판단해야 함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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