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영 변호사(심산법률사무소 대표)

”나쁜 놈들 변호할 때 기분이 어떻습니까.“ 약 4년 전, 변호사가 회원 대다수인 노동법 공부모임에서 질의에 답변하던 강연자가 자신도 궁금한 게 있다며 그 자리에 있던 변호사들에게 한 질문이다.

그날의 강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질문만큼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튀어나온 그 질문은 솔직하고 노골적이라서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변호사가 분별력 없이 아무 사건이나 맡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지적이라고도 느꼈다. 예상 외의 질문인지 청중들 사이에 약간의 당황과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고 대형로펌의 중년 변호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각자 사정이 있다. 진짜 나쁜지 아닌지는 사건이 끝나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변호사의 정체성에 회의감을 가진 때라, 강연자의 질문에 모종의 통쾌함도 느꼈다.

그날의 강연자는 몇 년이 지나 ”1주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 일하고 이후에 쉬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자 고용노동부 장관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최근에는 ”폭력적인 파업이 공공연해질 우려가 있고 불법행위가 책임을 면제받게 될 것“ 이라며 노란봉투법을 반대했다.

그가 30여년 몸담은 한국노총 시절에 했던 주장과 노동부 장관으로서 발언이 너무나 다르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자신이 부침격변이 특히 심한 노동 분야에서 긴 시간 생존해 냈고 자신이기에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막아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너무나 낡았다. 노조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불온단체라는 산업혁명 시대 자본가의 시각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노조설립에 허가가 아닌 신고제를 두고 있으나 실제로는 노조법이 정하는 요건에 따른 심사를 통과한 노조만이 노조법의 테두리 내에 진입할 수 있다. 한편 노동쟁의는 기본적으로 불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법이 정하는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간신히 적법성을 인정받으며, 노조활동은 노조법의 보호를 받기보다 배제되기 더 쉽다.

게다가 간접고용·특수고용 등 변칙적 근로형태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쉽게 무시되고, 노조법의 빈 틈으로 법기술자들이 각종 컨설팅을 통해 진짜 사장을 엄폐해 주는 동안 노동의 제값을 받는 당연한 일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일이 돼 버렸다.

현행 노조법이 노조와 노동자의 의무에 명확한 반면 그 권리에는 모호한 결과, 노동자와 노조가 기본 권리를 인정받는 것조차 법원의 자비에 의지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재판을 통해서 권리를 구제받더라도, 1·2·3심 재판 수년 동안 노동자들은 이미 죽거나 파산한 상태다.

뒤늦게나마 시민들의 요구로 노란봉투법이 국회의 입법을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의 재의결이 부결되면서 폐기됐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와 노동쟁의의 정의를 분명히 하고, 노동 3권 행사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며, 월급이 담긴 노란색 봉투처럼 노동자가 가진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를 담은 법이다.

나쁜 제도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에 대한 선의를 포기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나쁜 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악인들의 집합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고 철권 통치자의 신념에 찬 결단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대개의 나쁜 제도는, 정책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행동이 실제로는 손익계산에 따른 것이면서 마음으로는 공익에 이바지한다고 믿는 인지부조화 상태에서 나온다. 그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이라는 간판 아래 야합과 뒷거래가 진행된다. 판단을 회피하는 결정권자, 기존 제도에 길들여진 관료, 영혼 없이 명령에 따르는 집행자, 자기에게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진 정치인, 단체의 이권을 모든 공익보다 선순위로 두는 이익단체, 권력자와 친해지고 싶은 전문가, 출세 욕망과 대의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용기를 잃어버린 학자 등이 이합집산하는 혼돈과 무관심 사이에 사유는 실종된다.

덧붙여, 나에게 청량감을 선사해 준 그때의 강연자께 질문을 되돌려드린다. 낡아빠진 법을 열심히 수호하고 있는 기분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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