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보건의료노조 고유명사’ 지난달 말 이주호(61·사진) 전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정년퇴임식에서 후배들이 그에게 건넨 감사패에 적힌 문구다. 노조가 산별노조로 출범하기 전인 1993년 병원노련 시절 입사해 30년간 꼬박 정책·기획 담당자로 일한 이주호 원장이 지난달 말 정년퇴임했다.

정책기획실장·전략기획단장·정책연구원장 등을 거친 그는 독일 석사과정 유학 생활 1년과 민주노총 파견 3년을 제외하고는 30대 초반부터 인생을 전부 노조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부터 무상의료’ ‘보호자 없는 병원’ 같은 화두를 던지고, 임금인상을 넘어 의료 공공성 확대를 내건 산별파업이 가능하도록 의제를 설계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노동문제연구소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2023 한국노동문화대상 노동정책·복지 부문을 수여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이주호 전 원장을 만나 지난 30년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전태일 친구’ 되려고 노동운동 시작
선배 추천으로 병원노련 가게 돼

- 30년간 몸담았던 조직에서의 활동이 마무리됐다. 소회가 어떤지.
“한국의 척박한 노사관계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의제 중심의 산별노조운동을 나름대로 잘해 왔다고 생각한다. 지도부의 민주적 리더십, 중간 간부들의 헌신, 현장의 단결과 실천의 기풍 3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선후배와 동료들 ‘덕분에’ 30년 활동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처음 노조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왜 병원노련으로 가게 됐나.
“82학번인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전태일을 알게 됐다. ‘전태일의 친구’가 되기 위해 주변에서 많이 노동현장에 투신했고 저 또한 자연스럽게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80년대 말 인천에서 활동하다 소련 몰락 이후 노동운동에도 변화가 생겼고, 저도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시점에 선배가 병원노련을 추천해 면접을 보게 됐다. 의료계 종사자도 아닌데 왜 30년이나 노조에 있었는지, 제조업 현장이 아닌 병원을 택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역사적 사명이나 엄청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웃음). 나순자 전 위원장(당시 노조 서울본부 사무국장)이 면접을 봤는데 같이 활동하는 분위기가 좋았고, 일하면서 병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분출되는 현장의 요구와 노동운동의 동력을 확인하며 확신을 갖게 됐다.”

- 병원노련 시절부터 서울본부에서만 사무차장·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7년을 보냈다. 당시 대표적인 성과를 꼽는다면.
“주특기는 교육이었다. 자랑같지만 ‘조합원 하루교육’(단협으로 1일 유급휴가 보장)을 병원끼리 묶어 지역별 합동교육을 체계화했다. 현재 ‘대중강연-지부별 모임-전체 토론’으로 안착한 교육시스템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간부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그해 노조의 사업·투쟁 계획을 이해하고 참여하는 데 하루교육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꼽고 싶다.”

20년 넘게 ‘브레인’ 역할
‘돈보다 생명을’ 슬로건도 제안

- 2000년 첫 직선제로 당선된 차수련 위원장 집행부에서 정책실장으로 활동했다. 이후에도 전략기획단장·정책연구원장 등 20년 넘게 본조에서 정책·기획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기억에 남는 활동 몇 가지만 소개해 달라.
“2009년 ‘보호자 없는 병원’을 처음 전면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환자와 보호자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반드시 환자 옆에 보호자 1명이 상주해야 케어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현장에서 포착한 문제를 정책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해 화두를 던진 거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시절 경남에서 제일 먼저 시범사업을 했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사업을 운영·확대했다. 윤석열 정부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를 추진 중이다. 2005년 ‘암부터 무상의료’ 활동과 2011년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첫 발의 등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부터 의료인력 확충까지 보건의료 의제 흐름을 읽고 사회적 요구로 만들어 온 데 노조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 2003년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노조의 의료공공성 강화 투쟁도 본격화됐다. 이 구호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당시 지하철을 타고 가다 철도노조가 ‘돈보다 안전’이라는 포스터를 붙여 놓은 것을 보게 됐다. 눈에 확 들어왔다. 우리는 병원이니까 ‘돈보다 생명’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여기에 ‘을’과 조금 더 힘 있는 느낌을 내기 위해 느낌표까지 붙여서 ‘돈보다 생명을!’이 탄생하게 된 거다. 다른 나라에서 (노동시민단체가) ‘patient(people) before profit’ 같은 구호를 쓰는데, 이윤보다 환자(사람)라는 말보다 돈과 생명이라는 직관적 표현이 더 와 닿아서 번역이 필요할 때도 ‘life before money’라고 쓴다.”

노동자 노동조건과 환자 안전은 연결돼 있다

- 노조가 임금이나 처우개선이 아니라 왜 의료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없었나.
“현장과 유리된 당위적인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당연히 나왔다. 그래서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을 잘 통합해야 했다. 돈벌이 의료체계로 가는 순간 노동조건도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조합원들에게 설명했다. 실제로 병원이 돈을 버는 방법은 환자들을 통해 수익을 얻거나,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돈벌이 의료체계하에서는 환자나 노동자나 같은 피해자가 된다. 노동 의제와 의료공공성 의제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이러한 논리로 설득했고 내부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의료공공성 강화 투쟁이 보여주기식 투쟁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 노조가 정부 정책에 개입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면 정책적 역량을 키우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정책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 전략조직화기금처럼 정책연구기금 마련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지난해 노조 정책대회도 특별기금으로 예산을 집행했다. 기금 예산을 쓰려면 중집 결의를 받아야 하는데 지도부의 설득과 의지가 강했기에 추진할 수 있었다. 정책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투쟁보다 후순위로 밀릴 때가 많다. 정책 기금을 조직별로 설정하고 예산을 정책 역량 강화에만 쓰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산별교섭 미완, 끊임없이 보완 노력해야

- 보건의료노조는 1998년 산별노조로 전환한 뒤 2004년 첫 산별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서울대병원 노조탈퇴 같은 진통도 상당했는데 지금은 당시 협약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
“2004년 당시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 5일제 도입 같은 기업을 뛰어넘는 의제를 내걸고 파업을 했다. 기업별 투쟁에 연대하는 방식이 아닌 정말 산별총파업 다운 파업이었다. 대형병원이 참석했고 임금 합의를 포함한 산별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른바 ‘10장2조’ 논쟁이 붙었다. (당시 서울대병원지부는 산별협약은 최소기준을 정하는 협약이므로 일부 사항에 대해 지부 협약보다 우선 효력을 갖는다는 ‘10장2조’에 반발해 결국 노조를 탈퇴했다) 생산적인 논쟁이 이어질 수도 있었는데 편가르기식 정파적 논쟁으로 흐르게 된 점이 아쉽다. 다만 논쟁의 당사자들은 이제 은퇴하니 새로운 간부들은 공동 요구가 있을 때 같이 못 할 이유가 없다. 과거는 과거다. 마음을 열고 같이 하면 좋겠다.”

- 첫 산별협약 체결 이후 20년이 지났다. 지금의 노조 산별교섭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중앙교섭에 국립대·사립대병원이 참여하지 않는 문제 등 한계도 존재한다.
“내부적으로 협약 내용이 현장과 괴리돼 있다는 평가가 계속 나왔던 게 사실이다. 이는 현장의 구체적 목소리를 공동으로 요구하고 공동투쟁하는 방식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산별교섭에서 임금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문제는 산별공동 임금체계 연구·분석을 통해 보완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학병원이 참여하지 않는 문제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낮은 단계의 정책 협약부터 시도하고 있는데 계속 노력할 필요가 있다.”

현장·산별·노정교섭 비중 40·40·20으로

-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해 5만 입법청원운동을 추진·달성했지만 이에 대한 국회 논의는 잠잠한 상태다. 제도 개선 외에 노조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지금의 노동법이 사실상 기업별 노사관계만 강제하는 시스템이어서 산별교섭이 용이하도록 조금이라도 열어 주는 제도는 분명 필요하다. 제도화 투쟁은 투쟁대로 하되 입법이나 제도화에만 의존하는 산별 노사관계는 안 된다. 산별 단위에서, 현장에서 조금씩 가능한 수준으로 기업을 뛰어넘는 초기업 노사관계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 산별교섭과 사회적 대화나 노정교섭은 어떤 비중으로 가져가야 할까, 우선순위를 둔다면.
“한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기업(현장)교섭 4, 산별교섭 4, 사회적 대화 혹은 노정교섭 2 정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별교섭이나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기업별교섭을 악마화할 필요는 없다. 현장은 여전히 중요하다. 현장과 산별은 똑같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각 40% 정도로 배분하고, 노사관계로 풀 수 없는 부분은 노정교섭을 통해 채워야 한다. 노정교섭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정부위원회 참여다. 정부위원회는 노사정, 전문가가 들어가는 사회적 대화의 압축판이다. 밖에서 접하기 어려운 각종 정보와 구체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점도 이점 중 하나다. 이를 통해 규탄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비판과 대안 제시도 가능해진다. 윤석열 정부가 각종 정부위원회에서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있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운동가냐 직원이냐’ 논쟁 대신 전문영역 고민 필요

- 노조에서 1세대 활동가들이 정년퇴임을 하면서 세대교체에 따른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부분은 없는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활동가에 대한 정체성 논쟁이 있다. 운동가냐 직원이냐. 전자는 헌신과 봉사를 강조하는 것이고 후자는 워라밸에 집중하는 것이다. 저는 운동가냐 직원이냐 이런 대립적 논쟁보다는 ‘진보적 전문직’ ‘가치지향적 전문직업인’ 정도로 표현하고 싶다.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성도 중요하고, 전문성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 투쟁과 구호로 대치되지 않는 자기만의 고유한 전문 영역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고려대 노동대학원 수상소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더 큰 단결’ ‘초기업 산별교섭과 사회적 협의’ ‘사회운동 노조주의와 사회연대’를 화두로 후반전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향후 구체적인 계획은.
“남들은 빨리 쉬라고 하는데 (웃음) 박사 논문까지는 마무리하고 쉴 예정이다. ‘보건의료노조 산별모델’이 주제다. 활동 경험을 통해 냉철한 평가를 하고, 한국에서 산별노조 실현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등을 담으려 한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나서 와이프와 독일에서 몇 개월이라도 진정한 휴식을 취해 보려 한다. 이후 3가지 의제에 대해 현장에서 한 발 떨어져서 구체화 해보고 싶다.”

글=어고은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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