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표에게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 책임을 지도록 해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취지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 자체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기업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개념을 도입·적용하고, 직접적으로 기업을 처벌하는 방식의 강력한 제재를 추가해야 중대재해 예방 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처벌법으로 작동토록 법 개정 필요”

7일 노동·법학 분야 연구자인 박채은씨의 법학 박사학위 논문 ‘중대재해처벌법 개선방안에 관현 연구(기업 처벌의 근거와 방법을 중심으로)’을 보면, 박씨는 노동안전을 위한 형법으로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법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이날까지 법 위반죄로 재판에서 선고된 사건은 12건이다. 사건을 맡은 모든 재판부는 사업주의 법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대표이사가 실형을 받은 경우는 한국제강 1건뿐이고, 그마저도 법 최저형인 1년 징역형에 그쳤다. 중대재해 반복 사업장인 한국제강에 대한 법정형 하한선 선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논란을 낳고 있다.

법 시행 전후 한때는 사업주에게 부여한 안전보건 확보의무가 불투명하고, 확보의무 불이행이 중대재해 발생으로 이어졌는지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근 재판부 선고에서는 이 같은 점은 크게 논란이 되지 않고 있다. 법 위반이 명확하다고 보는 데도 최저형이 선고되고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집행유예가 나오는 수준의 낮은 구형을 하며 법 무력화를 앞장서고 있고, 재판부도 중대재해를 중대범죄로 판단하지 않고 관례적으로 판결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위법한 행위를 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그가 속한 법인도 벌금형을 부과하는 양벌규정을 통해 기업에 우회적인 형벌을 준다. 박씨는 논문에서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책임을 부여하는 것과 동시에 기업 자체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바꿔야 중대재해 감소가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재해를 유발하는 원인인자 중 하나가 기업이 가진 체계(시스템)이고, 이런 위험 요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기업을 직접 처벌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인만을 처벌 대상으로 보는 형법체계의 틀을 깨야 가능하다.

그는 논문에서 “기업은 더 이상 자연인의 행위, 구성원들의 집단적 의사의 총합 등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체계로서 그 스스로를 구성하는 자기생성체계”라며 “범죄능력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기업은 사회적 체계라는 특성을 반영한 안전 및 보건 확보의 의무를 구성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기업도 범죄능력의 주체,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으니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 ‘기업’을 적용 대상에 포함하자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기업과 경영책임자가 이행해야 할 안전보건 확보의무에 ‘현장 교육 실시와 이행·수료에 관한 조치’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공공안전이사 파견, 안전연대기금 부과’ 형벌 제안
“기업 형법 처벌시 산재예방체계 선제적 구축 기대”

기업을 처벌하는 형태로는 공공안전이사파견형·안전연대기금부과형의 두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중대한 산업재해 발생시 경영책임자·고위경영진·주주·노조대표자·산재유족·안전관리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합의제 형식의 상시 기구에서 산재 발생 원인을 밝혀 공표하고, 산재 예방프로그램을 마련하게 한다. 법원의 명령으로 파견된 공공안전이사도 협의기구에 참가한다. 사립학교 임시이사(관선이사) 선임제도와 유사한 형태다. 산재발생 기업에 안전연대기금을 기부하도록 법률로 강제하고, 모금된 기금을 동종 사업 하청기업, 중소사업장의 안전관리 구축 비용으로 사용하게끔 한다.

박씨는 논문에서 “외부인의 개입은 기업의 입장에서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행위로서 사실상 형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안전연대기금은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묻는 적합하고 효과적인 방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개정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을 기업처벌법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해야 산재예방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중대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못하는 영역은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형법으로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재구성해야 한다”며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만으로는 산재를 발생시키는 기업 내부의 구조적 모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보다 본질적인 규율방식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기업에 대한 형사적 처벌 규정이 도입된다면 산재 예방시스템 구축이 선제적으로 이뤄지리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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