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바로고·생각대로 같은 배달대행사의 지역 대리점 대표(지사장)는 라이더의 사용자로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왔다. 그간 대전과 창원 등 일부 지역에서 노조 요구에 따라 배달대행사와 노조 간 교섭이 이뤄진 적은 있었다. 노동위원회가 배달대행사 지사의 교섭 의무를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판정을 근거로 지역 배달대행사에 대한 교섭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바로고 시흥 지사장들 교섭 일제히 거부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1일 시흥바로고 1·6지사 대표 여아무개씨와 4지사 대표 김아무개씨가 각각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해태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지난해 6~7월 각각 여씨와 김씨에게 교섭을 요구했으나 교섭은 이뤄지지 않았다. 2명의 대표는 라이더가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닌 데다가 라이더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만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부는 경기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라이더-대리점 간 계약 지속·전속적”

경기지노위 판정서에 따르면 두 사건의 공통적인 쟁점은 라이더가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사용자가 단체교섭 의무에 응하지 않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경기지노위는 두 사건의 사용자가 라이더의 보수를 비롯한 계약 내용 전반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을 지니는 등의 이유로 라이더가 노조법상 근로자가 맞다고 인정했다.

라이더의 배달업무는 두 대리점의 사업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봤다. 라이더가 배달대행 업무를 하고 받는 수입이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아니지만 노조법 2조의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계약의 지속성 및 전속성과 업무상 지휘·감독관계가 인정됐다. 바로고와 배달통 같은 배달대행사 로고가 그려진 조끼를 입고 일하는 라이더와 사업자 간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함을 인정했다. 라이더의 배달대행 위·수탁 업무계약서에 따르면 당사자 간 계약기간은 12개월이지만 해지통보가 없다면 자동 연장되는 것으로 봐 당사자 간 법률관계가 지속적이며 전속적이라고 판단했다.

“일부 라이더 소득 낮아도
노조법상 근로자 부정 못 해”

플랫폼 노동, 긱 노동의 특성을 고려하고 반영한 근거도 있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노동자나 초기업적 노조의 조합원이라면 특정 사업자와 전속관계가 필요하지 않다. 또한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거나 구직 중인 자도 노동 3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몇몇 라이더의 소득이 낮다거나 소득의존도가 낮다는 이유로 노조법상 근로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나아가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범위가 ‘노무제공관계의 실질’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경기지노위는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서 배달대행업체에 노무를 제공하는 라이더가 집단적으로 단결함으로써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자인 배달대행업체와 실질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노무제공조건 등을 교섭할 수 있는 권리 등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것이 헌법 33조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지부 조직국장은 “역사적인 판정서”라며 배달산업, 플랫폼 업계의 근본적인 변화도 촉구했다. 그는 “지역 배달대행사를 상대로 노조활동을 하며 가장 힘든 일은 노동법을 설명하는 일”이라며 “판정 이후 사용자에게 전화해 교섭을 하자고 했더니 오히려 역정을 내 부당노동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배달업계에 이런 사장들이 전국에 7천900명 정도 된다”며 “노조법 개정을 통해 불필요한 논쟁이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역 총판 사용자성은 불인정

이번 판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또 있다. 지역 ‘총판’의 사용자성은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부는 여씨가 시흥바로고 대리점인 1·6지사의 대표이자 시흥지역 총판의 대표로 배달노동자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봤다. 총판이란 해당 지역 대리점들을 관리하는 지역단위 지사를 의미한다. 현장의 라이더들은 총판이 지역 대리점들을 관리·감독하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고, 따라서 대리점뿐 아니라 각 지역의 총판과 교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경기지노위는 “총판으로서의 시흥바로고는 별도의 법인격이나 사업자등록이 없고 총판의 역할은 바로고의 배달대행 서비스 수행을 희망하는 대리점들을 바로고에 승인 요청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 과정에서 어떤 계약을 체결하거나 수수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로서의 당사자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 사건의 사용자는 시흥 총판으로서의 여씨가 아니라 1·6지사를 운영하는 여씨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의미다.

라이더유니온지부를 대리한 민현기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이번 판정으로 지사장(대리점주)의 사용자성이 인정됐고 라이더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이 재확인됐다”며 “그간 합의나 취하를 통해 교섭이 이뤄지는 경우는 존재했지만 구체적인 판정과 판정문으로 이어진 경우는 처음으로 알고 있어 충분히 의미 있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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