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흡 한반도메밀순례단장

메밀은 구황(救荒)음식이다. 흉년으로 말미암아 극심한 굶주림에 허덕이던 극빈층을 구했다.

절구질·맷돌질로 메밀가루를 만들었으니 빻고 가는 행위는 생존 그 자체였다. 강원도는 곳곳이 1970년대 내내 전기가 엄청 귀했다. 깊은 산골에서 고운 메밀가루를 만들기란 불가능했다. 메밀의 겉껍질을 벗긴 것을 녹쌀이라한다. 녹쌀은 전기를 이용한 제분 시설 아니면 만들 수 없다. 겉껍질 채로 절구질·맷돌질을 해서 메밀가루를 만들었다. 면 뽑는 유압식 기계는 1980년대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분틀 형태였다. 이를 그대로 재현한 곳이 강릉 ‘권오복분틀막국수’. 주인장은 평창 진부, 아내 신동욱씨는 정선 고한 출신. 두 분 열정과 노력이 메밀막국수 면 만들기 원형을 재현했다. 오로지 국내산 메밀, 정선 녹쌀로 당일 사용할 면은 직접 제분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반죽해 분틀에서 면을 뽑는다.

녹쌀은 메쌀로 불리기도 한다. 쌀이 귀했던 강원도 산골에서는 메밀이 쌀 대용이었다. 유압식 기계에서 나오는 면은 균질한 데 반해 분틀로 뽑는 면은 힘의 강도에 따른 영향을 받아서 면이 들쑥날쑥이다. 면에 소다를 사용하면 분틀로 면을 내릴 수가 없다. 식용소다를 쓰지 않는 이유다.

정선산 메밀 100%. 굵게 간 메밀가루가 향이 훨씬 강하고 차가운 상태에서 갈아야 향이 오래 남는다고 한다. 메밀은 열에 매우 민감하고 날씨,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다. 습도의 영향은 손 반죽할 때 느낀다고 한다. 자줏빛 동치미가 나온다. 갓김치는 겨울에 나온다. 고명은 계란 지단, 김 가루, 오이가 전부. 삶은 달걀은 없다. 간장 양념장과 들기름이 나온다. 골동면(비빔면)으로 간장·들기름에 비벼 먹거나 동치미에 말아 먹거나 둘의 앞뒤만 있다. 동치미에 말아 먹으면 슴슴하고 구수한 메밀 맛을, 간장에 비벼 먹으면 면발의 질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단짠’에 길들여지고 조미료에 포위돼 숱한 기쁨을 마다한 입과 코가 ‘무미’의 극한을 느낀 다음 놀란다. 맛이 없기 때문이다.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라 혀가 놀라고 코는 잠시 쉬어 가고 입맛은 몹시 불편하다.

평생토록 부부가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자 노력해 온 고집과 철학이 면에 담겨 있는 이곳은 합목적적(?)으로 찾아가야만 한다. 평가 이전에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강원도 메밀막국수가 평양냉면, 일본 소바를 능가하는 음식으로 발전한다면 그 동력의 원천이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묵직한 구수함, 면발의 투박함 그러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러운 ‘100% 메밀국수’. 조미료라는 관행이 획일화된 선택을 강요할 때, 엔도르핀 치솟게 하는 단맛의 폭력이 일상화할 때, 익숙함이 얽어매는 여러가지 ‘틀’이 너무도 지겨워 결별하고 싶을 때, 찾아가리라.

한반도메밀순례단장 (pshstar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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