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분노에 잠겨 있던 지난해 말에 반가운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21일 서울고등법원은 쏘카㈜가 운영하는 실시간 차량·기사 호출 서비스인 ‘타다’의 운전기사가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2022년 1심인 서울행정법원이 계약형식만 살펴 타다 운전기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린 데다가<본지 2022년 7월11일자 14면 “플랫폼기업의 책임 회피에 면죄부 준 ‘타다’ 판결” 참조>, 6개월 전에는 타다 서비스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지라 이번 고등법원 판결이 주는 울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번 판결문은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순서에서부터 주목할 만한 법리를 보여주었는데, 업무 내용을 정한 것이 누구인지부터 따지고 있다. 종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들은 대개 ‘출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는가’와 같이 정규직을 기준으로 삼는 형식적 지표들을 맨 먼저 앞세웠다면, 이번 판결은 타다 기사의 업무 내용은 기본적으로 쏘카가 앱(App) 등을 통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정해졌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타다 기사가 그러한 틀을 벗어나 임의로 차량을 운행한다거나 앱을 통해 배정된 이용자 외의 다른 승객을 태울 수 없는 등 업무 내용을 스스로 정할 수 없었음을 인정했다.

특히 1심 판결이 타다 기사가 어느 날 일할지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했기 때문에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사용자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과 대조적으로, 서울고법은 타다 기사가 배차를 취소하거나 콜을 미수락하는 건수는 타다 기사에 대한 평가요소 중 하나이며, 그 평가결과에 따라 경고, 대면교육, 계약해지 등을 받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사실상’ 근무수락 여부, 근무시간 등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8월 아이돌보미를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로 인정하면서 대법원도 역시 아이돌보미들이 원치 않는 조건의 가정은 근무를 신청하지 않을 수는 있었지만 3개월 이상 활동하지 않는 경우 여러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점을 근거로 “사실상 돌봄활동을 계속적으로 수행하도록 유인하는 방안이 마련돼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외형적으로는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쪼개진 일자리’는 플랫폼노동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지만 단시간·호출·일용직 노동처럼 점점 더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법적 보호를 약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최근 법원도 이런 노동현실의 문제점을 점점 더 인식해 가는 추세인 것 같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에서 의미가 있는 부분은 다층적 계약관계 뒤에 숨어 있던 쏘카를 타다 기사의 사용자로 인정한 점이다. 쏘카는 2018년 앱 회사인 VCNC를 자회사로 인수하고, VCNC가 개발한 ‘타다 앱’에 가입한 이용자의 실시간 호출에 대해 차량과 기사를 동시에 제공하는 ‘타다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런데 여객자동차법과 노동법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쏘카는 운전기사는 ‘협력업체’를 통해 공급받는 형식을 취했다. 이처럼 현행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복잡하게 구축한 사업구조를 꿰뚫어 본 서울고법은 자회사를 통해 타다 서비스 운영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그 업무의 수행방안을 승인한 주체는 모회사인 쏘카이며, VCNC가 타다 기사에 대한 지휘·감독을 했다고 해도 이는 지배기업인 쏘카를 대행해 쏘카의 사업을 위한 업무를 행한 것이라고 적확하게 판단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됐던 쏘카의 타다 사업모델은 결국 노동법, 여객운수법 등 노동자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는 법령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비용을 자회사·협력업체, 그리고 먹이사슬 말단의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구조에 다름 아니었다. 이번 판결은 이런 불공정한 구조를 꿰뚫어 본 법원의 혜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9년 해고된 타다 기사 사건의 쟁송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법원을 통한 해결은 언제나 너무 늦다. 사용자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하는 입법과 정책이 여전히 절실한 이유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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