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미경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직장내 괴롭힘 금지’가 근로기준법에 명문화된 지 5년여가 흘렀다. 그 사이 많은 직장내 괴롭힘의 ‘피해자’들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피의자’가 되고 유죄판결까지 받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다.

A씨는 입사한 첫날부터 선임자에게 ‘그림자’ 취급을 받았다.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는 A씨는 전공을 살려 적극적으로 필요한 일을 찾아서 했는데, 선임자는 자신이 그동안 외면해 왔던 일들을 A씨가 나서서 하니 눈엣가시로 여겼던 것이다. 선임자는 A씨가 무슨 일을 하든 꼬투리를 잡고 “야, 너, 영업하던 새끼가 무엇을 아느냐”며 모멸적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입사 두 달여 만에 ‘우울증’을 앓게 된 A씨가 퇴사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유일했다.

A씨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하면서 선임자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자신을 향해 욕설을 한 녹음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선임자는 다른 사람이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방음기능’이 있는 문을 열어 놓고 밖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A씨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임자는 40초 만에 “또라이 새끼 아냐”라며 욕설을 했고, A씨는 괴롭힘의 결정적인 증거로 녹음파일을 제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피해자의 비밀을 유지해야 할 조사자가 가해자에게 녹음파일을 ‘손수’ 재생해 들려 줬고, 가해자는 A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해 보복했다.

근로기준법 76조의3 7항에 따르면, 직장내 괴롭힘 조사자는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되며, 당연히 누설의 상대방에는 ‘가해자’도 포함된다. 그러나 조사자는 비밀유지의무 위반에 대해 과태료 처분(근로기준법 116조2항2호)을 받지 않았고, 사측은 가해자가 ‘괴롭힘’이 아니라고 불복한다며 징계를 미루고 있다. A씨는 선임자와 자신 두 명뿐인 부서에서 분리되지 못한 채 매일매일 ‘가해자’와 마주해야 하는데 생전 처음 경찰 조사까지 받는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렸다.

통신비밀보호법 16조1항 각호에 따르면, 제3자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거나 이를 통해 알게 된 대화의 내용을 공개 또는 누설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즉, 직장내 괴롭힘의 ‘피해자’인 A씨는 누구나 오가면서 들을 수 있는 ‘가해자’의 대화를 녹음하여 괴롭힘의 증거자료로 제출했을 뿐인데 ‘벌금형’도 없이 금고 이상의 중한 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피의자’가 된 것이다. 녹음을 하게 된 사정이 참작돼 선고유예를 받더라도 취업규칙에 따라 해고에 이를 수 있다. 가해자는 여전히 직위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최근 서울북부지방법원은 '가청(可聽) 거리에서의 녹음' 즉, 특별히 전자장치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청력만으로 자연스럽게 들리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고 이를 범죄사실의 증명을 위해 수사기관에 제출한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는지에 관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했는데, 배심원 모두가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했다. 일반인의 법감정으로는 공개된 장소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대화를 녹음하고, 이를 수사기관 등에 제출한 행위까지 통신비밀보호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22. 6. 28. 선고 2021고합396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2. 11. 10. 선고 2022노1909 판결 참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보호가 헌법상 중요한 기본권임은 자명하다.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감청에서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통신비밀보호법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구두로 행해지는 ‘정신적 괴롭힘’은 발언을 하는 순간 소멸하고, 피해자의 ‘우울증’으로 남는다. 안타깝게도 통신비밀보호법은 여전히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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