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욱 변호사(법무법인 두율)

대상판결 : 대법원 2023. 11. 30. 선고 2019두53952 판결

1. 사실관계의 요지

이 사건의 피고 보조참가인은 일급제 계약직 보조원 신분으로 원고 의료원에서 약 5년7개월간 근무하고 퇴사한 자로, 참가인이 속한 중앙공급실은 병동에서 사용되는 각종 멸균 및 비멸균 물품의 공급 및 처리, 세탁물 관리 등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였다.

참가인은 위 중앙공급실에서 정규직 보조원과 동종·유사업무에 종사했음에도 조정수당, 위험 수당 등 정규직 보조원에게 지급되는 제반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는 차별 처우를 받았다는 이유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적 처우 시정신청을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원고 의료원의 참가인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인정하면서, 참가인에게 차별적 처우로 인한 손해액을 배상하라는 시정명령을 했다. 그리고 같은 결론이 피고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과 행정소송 1심에서 그대로 유지됐다.

2. 소송 진행 경과 및 대상판결의 쟁점

참가인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차별적 처우 시정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잠재적 비교대상자’란에 ‘중앙공급실 정규직 보조원’이라고 기재했고, 이후 이 사건 재심판정상 비교대상 근로자는 ‘중앙공급실 소속 기능직 3등급 3호봉의 정규직 보조원’으로 특정됐는데, 2심 법원은 이 사건 재심판정의 비교대상 근로자 선정이 위법하다면서 1심 판결을 취소했다.

2심 법원은 기간제법상 차별 처우의 존재를 판단하기 위한 비교대상 근로자는 반드시 실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업무를 수행한 실제의 근로자여야 한다면서, 참가인이 노동위원회 절차 진행 과정에서 본인의 업무와 구체적으로 비교하며 언급한 중앙공급실 정규직 보조원 A, B만이 비교대상 근로자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기능직 3등급 3호봉 정규직 보조원’과 같은 표시 내지 특정만으로는 비교대상 근로자가 적법하게 지정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1심 법원이 참가인이 수행한 업무를, 같은 중앙공급실 내 다른 개별 정규직 보조원 C, D가 수행한 업무와 비교하며 언급한 부분에 대해, 해당 근로자들은 ‘기능직 3등급 3호봉의 정규직 보조원’에 속하지 않으므로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벗어난 위법한 처분사유 추가 내지 변경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재심판정의 비교대상 근로자 선정이 적법한지, 1심 법원이 원고 의료원 중앙공급실의 개별 정규직 보조원 C, D가 수행한 업무와 참가인의 업무를 비교한 것이 위법한 처분사유 추가·변경 해당 여부가 대상판결 쟁점이 됐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2심 법원의 판단이 비교대상 근로자의 실재성, 중노위의 비교대상 근로자의 선정권한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시했다. 대상판결은 ‘기능직 3등급 3호봉 정규직 보조원’의 기재만으로도 충분히 비교대상으로 삼을 정도의 특정이 이뤄졌다고 판시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실제의 근로자만이 비교대상 근로자로 선정된다는 전제에서 ‘기능직 3등급 3호봉 정규직 보조원’이라는 기재만으로는 적법하게 비교대상 근로자가 선정됐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원심의 판단이 법리를 오해했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중노위가 참가인이 주장한 비교대상 근로자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조사, 심리를 거쳐 적합한 근로자를 비교대상 근로자로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고 봤다. 참가인이 비교대상 근로자로 중앙공급실 소속 정규직 보조원 일반, 기능직 3등급 3호봉의 정규직 보조원, 개별 근로자 A, B 등을 섞어서 주장한 데 대해 중노위가 직권 조사·심리를 거쳐 ‘기능직 3등급 3호봉 정규직 보조원’을 적합한 비교대상으로 삼은 데 위법이 없다고 봤다.

같은 전제에서 대상판결은 1심 법원이 새롭게 비교대상 근로자로 C, D를 추가·변경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 재심판정에서 비교대상으로 삼은 근로자를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앙공급실 내에 참가인과 업무의 동종·유사성이 인정되는 정규직 보조원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개별 근로자 C, D를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단계별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시정제도의 판단 구조에서 비교대상 근로자 선정의 적법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보고 진입 장벽을 높이면, 다음 단계인 차별금지 영역 해당 여부나 불리한 처우 및 합리적 이유의 존부는 판단받을 기회 자체가 근본적으로 제약돼 차별시정제도의 도입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대상판결은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신속하게 시정하기 위해 도입된 차별시정 제도의 취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절차적, 실체적으로 비교대상 근로자 선정의 적법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봐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근로자를 특정하지 않고 직위 내지 직급을 특정하는 추상적인 기재방식으로도 비교대상 근로자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확인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정규직 딜러와의 차별이 문제된 사건(대법원 2019. 9. 26. 선고 2016두47857판결) 등에서 법원은 이미 여러 차례 실재하는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직제 규정상 존재할 수 있는 근로자라면 적법한 비교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시를 했는데, 이와 달리 대상판결의 원심은 그 의미를 좁혀서 해석했다.

대상판결의 원심은 직제상 존재하는 근로자를 비교대상 근로자로 설정하는 것은 ‘직책 내지 직위의 특정만으로도 근로자가 실제 수행해 온 업무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했다. 직책 내지 직위의 특정을 통해 추상적으로 비교대상을 설정하는 방식에 엄격한 제한요건을 부가한 것이다. 하지만 대상판결은 이러한 해석이 법리오해에 불과함을 명확히 확인해 준 것이다.

대상판결은 비교대상 근로자 설정에 관한 중노위의 권한을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다. 종래 차별시정신청인이 재심단계에서 비교대상 근로자를 추가·변경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했으나(서울고등법원 2017. 6. 9. 선고 2016누51667 판결 등), 이와 관련해 중노위가 어떤 권한을 지니는지 명확한 선례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상판결은 중노위가 재심 단계에서 직권으로 비교대상 근로자를 선정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다만 그 범위는 차별시정신청인이 주장한 비교대상 근로자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로 제한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중노위는 근로자가 구제를 신청한 범위 내에서 판정할 수밖에 없긴 하나(노동위원회 규칙 제58조), 적어도 차별시정신청인이 주장한 비교대상 근로자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는 직권조사와 심리를 통해 적합한 비교대상을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차별시정 제도의 운용에 있어 중노위가 적극적으로 차별을 시정하고, 피해 구제를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5. 결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상판결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상 차별시정신청인이 직위 내지 직급을 특정하는 추상적인 기재방식으로도 비교대상 근로자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노위가 차별시정신청인이 주장한 비교대상 근로자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 적합한 비교대상 근로자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의의가 있다. 현행 규정과 기존 판례 법리 안에서 차별시정제도의 도입 취지인 차별로 인한 피해 구제에 충실한 해석을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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