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연극 <악몽 또한 당신을 들여다본다>는 어느 날 잠에서 깬 인물이 간밤에 꾼 어떤 악몽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신이 꾼 악몽 속에 이 세상을 망치는 것들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있다고 단언한다. 불현듯 직장을 때려치운 그는 악몽제거협회를 만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무한(惡無限)에 빠져든다. 작가와 연출, 배우들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잠언을 변용해 모순에 맞선 동시대의 어긋난 접근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듯하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통상 연극은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러니 그 연극이 표현하는 ‘세계’는 그 사건을 벗어날 수 없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계 역시 주목받는 어떤 사건 바깥을 포괄해 존재한다. 뭇사람들의 언로와 공론장은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조직되지만,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부조리는 대체로 그 사건들의 바깥에 위치한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진 채로 공연장을 나오면서 한국 정치와 사회의 현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가령 올해 한국 정치가 보낸 시간은 악몽 그 자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체적 무능을 보이며 한국 사회와 노동자의 삶을 공격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노조에 대한 공격에 그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무지몽매한 지침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 목소리를 내자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듯하더니, 다시 개악의 향기를 내뿜으며 노동조건 후퇴를 기도하고 있다.

거대 양당과 대법원마저 거들고 나섰다. 지난달 3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만장일치로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을 가결 처리했다. 산자위에는 민주당 16명, 국힘 12명과 더불어 한국의희망 양향자 의원, 무소속 윤관석 의원이 속해 있다. 법안은 수도권 내 인구감소 지역과 접경지역 포함 비수도권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신청하면 지방시대위원회 심의를 거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특구’로 지정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특구는 근로기준법 116개 조항 중 50·51조 단 두 개 조항을 제외하곤 전부 적용받지 않을 수 있다. 노동시간 기준도 어길 수 있고,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설상가상 대법원은 연장근로시간을 ‘하루’를 기준으로 따진 1·2심 판결을 뒤엎고 ‘한 주’를 기준으로 계산한 판결을 내렸다. 야근·밤샘처럼 몰아서 연이어 일하는 것을 위법하지 않은 것으로 본 것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 헌법을 기준으로 판결하는 자가 한편이 돼 악몽을 재생산한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실이나 여당과 이전투구를 반복하면서, 뒤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하는 개악안을 국민의힘과 함께 통과시켰다. 악몽을 제거하겠다면서 스스로 악몽이 되고 마는 연극 속 부조리로 가득한 인물들이 떠오른다.

악몽은 21대 국회 최연소 의원 류호정에게도 반복되고 있다. 그는 번지수를 한참 어긋난 노동운동 비판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보수언론 식 노동운동 책임론을 가장 앞장서서 내세우는 당사자가 됐다. 이런 어긋난 이론에 기대 ‘노선 전환’을 주창하던 그는 최근 대다수의 정의당 당원과 국민 여론 설득에 실패하자 후안무치하게도 탈당도 하지 않고 금태섭, 조성주 등과 함께 ‘제3지대’에서 새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의 행보는 외면상 ‘제3지대’를 표방하지만, 노동권을 무시하고 노조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거대 양당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념이 부재한 ‘제3지대’가 또 다른 악몽처럼 들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회정의나 진보는 그리 간단치 않다. 선악 구도가 선명한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악당과 착한 편이 깔끔하게 나뉘지도 않는다. 류호정을 비례 1번으로 만든 정의당의 청년정치인 만들기 프로젝트 실패와 오류는 두고두고 반성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뒤늦게나마 잘못된 노선과 선을 그은 진보정당운동에 온갖 이데올로기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공격하고 비난하는 류 의원의 모습은 ‘후안무치’가 시대정신이 됐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타락한 정치인들이 만든 연쇄 악몽을 떨쳐버릴 수 있는 신년을 꿈꾼다. 그것은 기존에 우리가 반복해온 길과는 분명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일터와 현장에서 체제전환의 대안을 조직하는 이들만이 우리 시대의 희망이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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