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연재 공인노무사      (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 최연재 공인노무사      (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누구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빌려 쓸 때는 조심해서 사용한다. 그러나 회사의 업무용 컴퓨터는 한동안 나만 사용하다 보니 ‘내 물건’이라고 인식하기 쉽다. 그래서 업무용 컴퓨터로 친구들과 편하게 얘기하고 개인용 자료를 내려받기도 한다. 그러나 업무용 컴퓨터는 회사 물건이다. 회사가 사서 구입하고, 사업장에 보관돼 있다. 무엇보다 내가 자리를 옮기거나 회사를 나가도 컴퓨터는 남는다. 최근 담당했던 사건들에서 연달아 사용자가 징계 혐의가 있는 노동자의 업무용 컴퓨터를 포렌식해서 증거자료를 확보하고자 했다. 노동자들은 개인적인 자료는 다 지운 줄 알았으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내 자료가 남는 것이 무서워 컴퓨터를 포맷한다면 업무용 자료도 지워지기에 업무방해 등으로 징계나 소송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 포맷은 적절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다만 포맷을 하더라도 징계사유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업무상 필요한 문서는 별도 보관하고, 사업장 내에 업무용 컴퓨터를 통해 직접 파일 등을 인수인계하는 절차와 관련 규정도 없고, 노동자에게 업무를 방해할 의사도 없었다면 징계사유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서울중앙지법 2021가합509425 판결).

한편 노동자들이 쉽게 하는 선택은 개인적인 자료만 골라서 지우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어떤 이유를 대며 컴퓨터를 포렌식하면 메신저 대화내용, 개인자료 등을 건질 수 있다. 심지어 포렌식까지 가지 않더라도 컴퓨터 어딘가에 임시 저장 파일로 카카오톡 대화내용 등이 남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것도 안전한 방법이 아니다. 물론 업무용 컴퓨터는 회사 소유재산이더라도 그 안의 카카오톡 대화내용 등은 나의 것이므로 마음대로 포렌식해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포렌식이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 법원은 범죄 혐의를 구체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긴급히 확인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으면 열람을 범죄 혐의와 관련된 범위로 제한하고, 노동자가 업무 관련 결과물을 모두 회사에 귀속시키겠다고 약정한 등의 경우 포렌식이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본다(대법원 2007도6243 판결).

그러나 회사의 포렌식이 범죄행위라고 해도 회사가 이를 통해 획득한 자료를 징계 및 해고 등의 근거로 사용한다면 당장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증거자료가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노동위원회나 민사에서는 증거자료의 적법성을 엄밀히 따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자료를 배척하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뻔한 결론이겠으나, 가장 좋은 예방법은 업무용 컴퓨터를 조심해서 쓰는 것이다. 업무용 컴퓨터로는 사적인 내용의 대화를 하지 않고, 사적 자료를 내려받지 않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지금까지 조심하지 못했다면 그러한 자료들을 빨리 삭제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최소한 컴퓨터 내에 임시 저장 파일의 형태로 남은 대화내용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어질 수 있다. 나아가 사용자의 허락을 얻고, 필요한 업무용 파일은 모두 USB에 보관하여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포맷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이때 사용자의 허락은 반드시 받는 것이 안전하며 허락을 증거자료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생각보다 많은 사무직 노동자들이 업무용 컴퓨터를 내 물건이라고 인식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업무용 컴퓨터는 남의 물건이고, 남의 물건을 쓸 때는 각별하게 조심해야 한다. 특히 회사는 내 친한 친구나 가족이 아니므로 자기 물건에 남은 내 흔적을 어떻게 사용할지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옆자리의 동료와 인사하고 업무를 잘 처리하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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