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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비롯된 일이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30개, 은메달 33개, 동메달 40개로 4위를 차지했다. 4위라고 하지만 메달의 숫자도 그렇고 다른 나라와 격차나 종목별 성취도 등을 따져보면, 하락세다. 종합 16위를 차지한 2021년 도쿄올림픽과 올해의 아시안게임을 세계 여러 나라의 상향 평준화와 연관시켜 보면 2024 파리올림픽에서 한국은 20권 안팎이 되리라는 예측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항저우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장에서 “우리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변화하는 훈련 방식, 시스템에 중점을 둬 해외 사례들, 특히 경쟁국의 훈련 시스템 등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그런데 “해병대 훈련” 얘기가 나왔다. 이기흥 회장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촌하기 전에 2박3일 해병대 훈련을 할 계획이다. 나도 같이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두 달가량 흐른 뒤에 ‘정밀하고 분석하고 대응’한다던 대한체육회의 활동 중에서 눈에 두드러진 것은, 아직 해병대 훈련뿐이다.

국가대표에게 해병대 훈련이라니

해병대 훈련은 뛰어난 기량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에게 효과가 있는가. 단언컨대 전혀 없다. 성별·연령별·종목별 신체적 특성이 아주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극히 섬세한 차원에서 트레이닝하는 고도의 대표급 선수들에게 해병대 훈련은 신체적 측면에서 오히려 역효과다. 유연성과 리듬감이 필수적인 수영이나 체조 선수들에게 적을 기습해 강인하게 척결하는 것으로 구성된 해병대 훈련이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정신력 강화는? 이 또한 무리가 있다. 정신력 강화라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다. 국가대표급 선수라고 하면 그 종목에 있어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수준으로 자신의 심리 상태를 컨트롤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엄연히 존재하고 진천선수촌은 물론이고 소속 팀이나 학교에서 첨단의 스포츠과학과 심리·상담·코칭 등이 이뤄진다. 물론 이 모든 기관과 시설과 프로그램 역시 그 무엇인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설계된 것은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모든 ‘과학적’ 기관과 시설과 장비와 전문가와 프로그램을 제치고 해병대 훈련에 참가한다는 것은 대한체육회와 유관한 스포츠 전문기관과 전문가를 무시하는 처사다.

고난도의 군사훈련 과정을 적절히 모방하고 재구성한 프로그램에서 ‘정신력 해이’라든지 ‘잘 할 수 있습니까’ 하면 ‘잘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복창하는 장면은, 50년 전 20세기 중엽의 개도국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정확히 말해 그 시절에도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방식이 아닌 선진적이고 과학적인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없었기에 ‘정신력 강화’ 일변도로 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사실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에 이미 낡고 진부하고 거친 조치들이 시행됐다. 장재근 국가대표선수촌장은 선수들의 ‘해이해진 정신’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그동안 강압적일 뿐만 아니라 신체 훈련에 효과도 없었던 새벽 산악구보를 부활시켰으며 외출이나 외박을 엄격히 통제하고 급기야 심야시간대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까지 내렸다. 해병대 훈련 캠프에 입소하기 이전부터 대표 선수들은 군인들처럼 엄격한 ‘내부반’ 생활을 했다. 그랬는데 4위에 그쳤으면 이제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해병대 훈련까지 강제한 것이다.

골때녀 신드롬을 보라

이런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지금 세계는 다양화되고 다변화됐다. 최상위 개념인 ‘국가’가 정치·외교·군사·경제적 차원에서는 강력하게 작동하지만 기후·환경·문화·일상·스포츠·여가 등에서는 국가의 ‘강력한 그립’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개별 도시와 자유로운 시민들의 활발한 교류와 연대가 지구 곳곳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인구 감소·노동과 고용형태 변화 등으로 20세기의 정치·경제·사회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스포츠의 범주와 그 가치 역시 급변하고 지도자와 선수라는 뼈대에 더해 스포츠와 연관된 미디어·콘텐츠·산업·경영·법률·기획 등의 직업이 확장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부산에서 열린 e스포츠계의 월드컵 ‘2023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을 보자. 온라인 누적 시청자수가 무려 4억명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1만5천여명 관중이 모여 응원전을 벌였고 결승 티켓은 10분 만에 매진됐다. 물론 이 종목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기도 하다.

욕망과 가치 측면을 보자. 이른바 ‘골때녀 신드롬’ SBS 축구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 의해 여자 축구동호회가 급증했고 풋살 경기장, 용품, 각종 대회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가 여자 축구 활성화를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대부분 20세기 방식이었다. 반면 ‘골때녀’의 핵심은 축구를 하는 순간의 환희와 수많은 동료들과의 ‘찐한 우정’이다. 그러자 수많은 여자들이 축구화를 신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2023년 8월1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올해의 양성평등문화 콘텐츠상’까지 수상했다.

더 거시적으로 보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미 ‘올림픽 어젠다 2020’를 통해 자원 공유와 사회적 가치의 공존을 통해 스포츠가 인류가 직면한 각종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제시했다. 스포츠가 ‘수많은 사회관계와 결속해 지속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며 기후·환경·분쟁·가난·혐오·차별·선수 보호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그러한 활동은 올림픽 대회를 통해 확인되고 확산된다.

유독 한국만이 예외다. 기후 위기나 혐오·차별·분쟁의 극복은 중요한 과제로 설정되지 않는다. 선수의 신체·인권·자격의 보호와 신장은 오히려 20세기 중엽으로 역행한다.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고 군사훈련 캠프에 가서 ‘정신 무장’하라고 강제한다. IOC로부터 제재를 받아야 할 일이다.

스포츠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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