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또 비극이다. 이번엔 78살 이모와 50대 조카다. 전남 순천시 행동의 한 빌라에 살던 78살 여성 강아무개씨가 지난 7일 자신이 돌보던 50대 중증 장애인 조카 선아무개씨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발견된 조카 선 씨도 며칠 동안 못 먹어 탈진했다.

이 집은 20일 이상 외부와 단절됐다. 조카 선씨는 지적 능력이 3~4세인 지적장애 1급이었다. 혼자 움직이거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순천시는 지난달 27일 숨진 강 할머니 집에 지원물품인 쌀을 가져갔다가 인기척이 없자 현관문 앞에 놓고 왔다.

강 할머니는 조카가 3살 무렵부터 보살폈다. 조카의 친부모는 일찍 죽었다. 할머니는 소득은 거의 없지만 재산이 좀 있어 기초수급 생계급여도 못 받았다. 할머니는 고혈압과 당뇨를 앓았다. 다만 조카에게 장애급여가 나왔다. 이런 취약계층은 사회복지사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지역엔 취역계층만 300가구인데 담당 복지사는 딸랑 2명이다.

결국 할머니 집에는 지자체 민간위탁기관인 노인복지센터 소속 활동지원사가 방문했다. 그러나 평소 왕래하던 활동지원사가 지난달 19일 다리를 다쳤다. 센터는 대체인력을 보내겠다고 하자 할머니가 거절했다. 할머니는 2년 전 활동지원사가 물건을 훔쳐 간다며 센터에 중단을 요구했고 이번에도 그랬다.

결국 할머니 안부를 챙긴 건 다리 다친 활동지원사였다. 그는 할머니가 계속 전화를 안 받자 경찰에 알렸고, 경찰과 소방당국이 문을 강제 개방하고 들어갔다. 할머니 시신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다. 옆에 누워 탈진한 조카는 이모(할머니)가 숨진 줄도 몰랐다.

경찰은 쌀 배달 때 이미 할머니가 숨졌을 걸로 추정했다. 다만 순천시가 문 앞에 놓고 간 쌀이 시신 발견 땐 집 안에 옮겨져 있었다.

이렇게 ‘수원 세 모녀’가 도처에 등장하는데도 대통령은 돌봄 예산과 복지 공무원을 줄이겠다고 호언한다. 대통령은 이런 꼴을 보고도 ‘공공’보다는 ‘민간위탁’이 더 효율 높다고 자위하며 내년 예산을 짰다. 책임 전가의 달인인 대통령이야 또 지자체와 센터를 탓하겠지만, 자립도가 20%도 안 되는 지자체 욕하고, 제 한 몸 돌보기도 빠듯한 민간위탁기관에 책임 물을 일은 아니다.

대통령은 킬러 문항을 없애라고 지시했지만, 이번 수능은 만점자가 1명에 불과한 ‘불수능’이었다. 여러 교육단체는 “사교육 의존도 낮추기에 실패했다”고 한목소리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수학 46개 문항 중 6개가 고교 교과 범위를 벗어나 출제됐고, 특히 22번에 나오는 ‘함수부등식’은 대학 교재에 나온다”고 질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육부는 대통령 지시대로 “킬러문항 없이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자평한 뒤 모르쇠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안전망 때문에 매일매일이 비극인데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둔 공천 규칙을 정하는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친명이 추진한 민주당 새 당헌은 ‘개딸의 영향력을 확대’했고, 비명은 “나치를 닮아간다”며 날을 세웠다.

감사원은 오늘도 ‘감사원 정치’에 여념이 없다. 감사원은 3년 전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을 ‘문재인 정부의 월북 몰이’로 결론 내렸다. 동아일보는 지난 8일 1면에 “서훈 ‘공무원 北해역서 표류’ 보고받고도 오후 7시경 퇴근”이란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이를 보도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간에 나 홀로 작업하다가 참혹하게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사건을 무려 5년 만에 판결하면서 원청 대표에게 무죄를 확정해 줬다. 상식을 거스른 법 기술자들이다.

순천 강 할머니 죽음을 의미 있게 보도한 신문은 조선·중앙·동아도 경향·한겨레도 아닌 한국일보(12월8일자 11면)였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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