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대화를 목적으로는 처음으로 노사정 대표자가 만났지만 동상이몽을 재확인했다. ‘근로시간’ 문제를 사회적대화에 포함시키려는 정부와 노동계의 지난한 샅바싸움이 예상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1월 중 본위원회를 열겠다는 목표인데 대화 진척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음식점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한국노총이 사회적대화 복귀를 선언한 지 한 달여 만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6월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농성 중 경찰에 무력진압된 ‘광양 사태’ 이후 사회적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노사정이 제안한 의제도 엇갈려

우여곡절 끝에 노사정 대표자가 만났지만 대화가 순탄치 않음을 예고했다. 정오에 시작한 오찬이 1시간40분께 끝나자 경사노위는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는 현재 우리 노동시장이 직면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산업전환·계속고용·근로시간 등 산적한 노동 현안에 대한 조속한 사회적 대화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알렸다. 이어 “빠른 시일 내에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개최하고 노동 현안에 대한 회의체(의제별 위원회 등)를 밀도 있게 운영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노사정이 세 가지 의제에 공감하고 향후 경사노위 내 의제별위원회가 가동된다는 의미를 담은 셈이다.

그러자 한국노총은 곧장 반박의견을 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근로시간에 관한 이야기는 나눈 바 없으며, 사회적 대화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각자 관련된 이야기를 한 것일 뿐 이것이 향후 대화 의제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경사노위쪽은 의제가 확정된 것은 아니고, 근로시간·계속고용·산업전환은 각 주체가 제안한 의제를 예시로 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누가 어떤 의제를 주로 제안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노정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경사노위는 근로시간은 재계, 산업전환은 노동계, 계속고용은 정부가 꺼내든 의제라고 설명했다. 반면 노동계는 계속고용에 관한 논의를 제안했고 정부가 근로시간, 재계가 산업전환 의제를 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사노위는 본위원회 개최를 서두르고 있다. 이달 말부터 1월까지 노사정 부대표급에서 의제 논의를 거쳐 같은달 본위원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제별·업종별·특별위원회 등 의제 논의 기구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 부대표급 회의는 12월 말 한 차례 더 예정돼 있다.

노동개혁 의제 포함하려는 정부
거부하는 노동계, 속내 숨기는 재계

관건은 근로시간이 의제에 포함될지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1호 과제다. 주 최장 69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지난 3월 입법예고 했지만, 여론 반발에 좌초됐다. 이후 재검토하겠다며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지난달 그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연장근로가 필요한 일부 업종·직종별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하겠다는 쪽으로 사실상 방향을 잡았다. 노동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안이다. 이날 회의 직후 경사노위 발표를 한국노총이 반박한 것도 이런 기류를 그대로 보여줬다ㅣ.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2013년 12월 본회의에서 노동시장구조개선에관한특별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하고, 1년 동안 의제를 가지고 논의했다”며 “(부대표급 회의에서) 어떤 의제를 가져갈 것인지 정하면 본회의에서는 그 방향과 거버넌스를 의결하는데 2013년에는 그 과정이 2~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논의가 시작되더라도 합의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노정 간 갈등이 계속 부각되면서 재계는 한 발 뒤로 빠져 속내를 숨기는 모양새다. 한국경총 관계자는 “노사정이 모여 의제를 논의하겠지만, 경영계 차원에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어떤 걸 가지고 논의를 진행할지 정해진 것이 아니다”면서도 “생각하고 있는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니고 어떤 (의제를) 제시할 것이냐, 우선순위를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 문제이니 일정이 구체화되면 거기에 맞춰서 속도조절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제세팅 과정에서 근로시간 문제 외에도 파견근로 범위 확대, 임금삭감을 전제한 계속고용 같은 노동유연화도 언제든지 수면에 떠오를 수 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노사정이) 애초부터 방향을 서로 합의하고 추진한 것이 아니라, 의제를 조율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는 계속 노동개혁 의제를 다루고 싶어할 테고, 한국노총은 그것에 대해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가급적 안 다루려 할 것이고, 그래서 총선 전까지 무엇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만 노동개혁 의제가 아닌 제 3의 의제를 다룬다면 논의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강예슬·제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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