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올 한 해 내가 일터에서 겪었던 가장 큰 위기는 고용불안이었다. 내가 일하는 상담소는 한국노총이 고용노동부에서 국고를 전액 보조받아 운영한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발하며 노정 간 대립은 격화했고, 정부는 노동계를 길들이기 위한 카드로 국고보조금 지원 중단을 꺼내 들었다.

일터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한국노총은 조합비로 우리들의 임금을 책임지고 있다. 부족하지만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취약 노동계층을 위한 법률상담 서비스도 계속하고 있다. 120만명의 조합원이 마음을 모아 계속하라고 격려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 놓인 노동상담기관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5년에 설립돼 연간 수만 건의 노동상담과 노동인권 교육을 책임졌던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예산을 전년 대비 30% 이상 삭감했다.

아예 내년부터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려는 정부 시도도 있다. 정부는 2000년부터 시작해 20년이 넘게 전문성 있는 여성·노동단체에 위탁해 운영해 온 고용평등상담실 사업을 폐지하기로 정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전국 44개 센터에서 50만건이 넘는 상담 서비스를 수행해 온 외국인력상담센터 사업 역시 폐지하고 고용노동부가 지방노동관서를 통해 해당 상담업무를 직접 수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비정규·여성·외국인 노동자 등 취약 노동계층 지원 사업을 축소·폐지하면서 노동자들은 임금체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는 노동상담 인력의 임금이 수개월간 체불되기도 했다.

정부의 방침은 경제위기 속에서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 그 쓰임을 효율화하고, 특정 시민단체나 노동단체에 예산을 몰아 주던 것을 방지하겠다는 데서 비롯했다. 그러나 특정단체에서 몰아 줬다는 사업은 그 성격상 특혜나 기득권과는 거리가 멀다.

취약 노동계층에게 노동법률상담을 무료 지원하고, 특성화고 학생 등 예비직장인들에게 노동법률 교육을 수행하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져야 하는 고용노동행정서비스다. 인사노무관리 역량을 갖추기 어려운 중소·영세기업의 노사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법률상담을 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고용노동 전문가들도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며 피하는 일이다. 행정기관이 직접 수행하기에 전문성과 인건비의 부담이 커 민간단체에 위탁해 수행해 온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동안 해당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독식한 것처럼 묘사하니 묵묵히 노동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온 당사자들이 느낄 허무함과 분노는 얼마나 클까.

방만한 민간위탁 사업 재정비와 정부 예산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 예산을 가장 먼저 뭉텅이로 잘라 낸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의도는 뻔하다.

노동과 여성,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크게 보장될수록 이들을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해 이윤을 남겨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불편함이 크다. 더욱이 노동자들을 위한 필수적 민간위탁 사업 수행 기관들이 사사건건 정부의 노동과 고용정책에 비판을 쏟아 내니 정부로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을 빌미로 한 일방적인 행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우선은 정부의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취약노동 계층에 대한 고용노동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민간위탁기관 당사자들의 공동대응도 필요하다. 내년부터는 양대 노총뿐만 아니라 지자체 비정규센터 등 고용노동 분야의 민간위탁 기관들이 전국적 연대체를 구성해 취약노동 계층을 죽이는 정부의 일방적 ‘갑질’을 막아야 한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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