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 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에 가로막히던 날, 국무총리는 “노조법 개정안은 교섭 당사자와 파업 대상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등 건강한 노사관계를 저해하고,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며,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헌법이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가 노조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권고했지만, 단체교섭이 활성화되고 노동환경에 관한 사용자의 일방적 결정에 노조가 개입하는 것이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에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도식이 또다시 등장한 것이다.

노조할 권리와 일터 민주주의를 국민과 국가의 적으로 돌리는 노조혐오는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1953년 ‘노동조합법’ 제정 당시부터 노조의 결격 요건, 노조 가입의 제한, 규약과 노조 결의의 취소·변경, 임원 선거·조합비에 대한 제한, 행정관청의 검사 등 노조의 운영과 활동을 국가가 촘촘히 규율하고 위반하면 형사처벌하는 ‘단결금지법’으로서의 성격이 명확했다. 노조활동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 규율체계는 민주화와 함께 일부 완화됐지만 노조법 제정 70주년이 된 현재까지도 기본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투쟁과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투쟁을 효과적으로 봉쇄한 정부는, 그후부터 ‘노조의 재정 투명성 강화’ ‘위법·불합리한 규약과 단체협약 시정’ 근로시간면제제도 운용 현황 감독 등 노조 활동 전반에 대해 행정력을 총동원해 규제를 강화했다. 법적 근거도 미비할 뿐더러 ‘노조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라는 명분과도 전혀 관련이 없는 행정개입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노조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5월 정부는 공공부문 단체협약 실태조사 결과를 밝히면서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불공정한 특혜, 인사·경영권 침해 등 공정과 상식의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이 전체의 28.2%로 파악됐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구조조정시 노사합의, 근무시간 중 조합활동 허용 등은 위법이 아닌데도 인사·경영권 침해라는 모호한 잣대를 들이대며 노조활동에 불법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이러한 정부의 노조혐오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얼핏 보면 상급단체나 대기업노조 같지만, 사실 진짜 피해자는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라 할 수 있다. 2022년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통해 요구했던 것은, 조합원의 임금(운임) 인상이 아니라 전체 영업용 화물차노동자의 최저임금이라 할 안전운임제의 지속이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요구했던 것은 경제위기라며 원청이 일방적으로 삭감했던 기성금(인건비)의 회복을 위해 실제 권한을 가진 원청과 교섭이었다. 이러한 요구들은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불공정한 구조와 관행을 개선해 밑바닥을 조금이나마 덥히려는 노력, 요즘 인기있는 말로 바꾸자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노동자 투쟁을 억압하기 위해 불법·폭력, 집단이기주의라는 악의적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리고 경찰, 근로감독관, 관계부처, 정부의 각종 위원회 등 공권력을 총동원해 노조의 자주적 활동에 대한 전방적위 간섭을 제도화하고 있다. 그 피해는, 원청의 기성금 지급 부족으로 인해 현대중공업에서만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하청노동자들이 두 달째 1억8천억원의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는 사례처럼 밑바닥의 붕괴로 전가되고 있다.

원청을 상대로 한 건설노조의 단체교섭을 공갈죄로 처벌한 것에 대해 2006년 ILO 결사의자유위원회가 경고했던 문구로 글을 마무리한다. “노조 활동가들에 대한 처벌은 정상적인 노조 활동의 발전에 불리한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위협 효과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을 최근에 행사하기 시작한 불안정하며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훨씬 강력할 수 있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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