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여정 서초구의회의원이 13일 오후 서초구의회 제1위원회실에서 ‘직장내 괴롭힘과 지방정부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현직 공무원입니다. 직장 상사로부터 사무실 외 식사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전달하는 척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방자치단체에는 직장내 괴롭힘 관련 조례는 없고 오로지 감사부서 판단에 따라야 합니다.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은 불과 2년 전 감사부서에서 감사 업무를 봤던 사람입니다. 신고 후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공무원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지자체 공무원이 올해 8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한 사례다. 공무원이 직장내 괴롭힘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2020년~2023년 5월 전국 광역자치단체에서 발생한 직장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557건에 달한다. 2020년 128건에서 지난해 178건으로 1.4배 늘었다. 하지만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된 건수는 167건(31.9%)에 불과했다.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해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안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여정 의원 조례 발의 “실천적 방안 모색”

서울 서초구가 강남 3구 중 가장 먼저 지난 11월2일 ‘서초구 직장내 괴롭힘 금지 및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시행해 눈길을 끈다. 조례를 발의한 강여정 더불어민주당 서초구의회 의원은 13일 오후 서초구의회에서 ‘직장내 괴롭힘과 지방정부의 역할’을 개최하고 조례의 실천방안을 논의했다. 도심권·동남권 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함께 주최하고 한국공인노무사회와 서울서초청년회의소가 협력했다. 강 의원은 “단순히 조례 발의로 그치지 않고, 서초구의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상호 간 존중하는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토론회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예방과 피해자 지원이 쟁점으로 다뤄졌다. 발제를 맡은 정숙희 도심권 서울시 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조례가 임의규정으로 돼 있고, 적용 범위가 민간부문까지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센터장은 “지자체 신고센터의 설치와 운영이 특정되지 않아 노동업무를 지원하는 서울시노동센터에서 다른 업무와 병행하고 있어 실효성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 자치단체 26곳 중 15곳이 조례를 제정했다.

서초구 역할도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지속적인 조례 개정을 통해 실효성 제고가 필요하다”며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결과를 공표해 민간기업에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와 연계하고 강사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방안도 제안했다. 그러면서 서초구의회가 행정감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꾸준히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례 실효성 높이려면 임의규정 보완해야

조례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전문성을 갖춘 신고센터 설치 △특별신고기간 운영으로 예방효과 제고 △실효성 있는 실태조사 △구청장 특별담화문 등을 제시했다. 박 위원은 “조례 적용범위에 서초구 공무원과 직속기관뿐만 아니라 위탁기관과 복지시설을 포함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 “근로기준법에 미비한 ‘2차 피해(가해)’를 명시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홍종선 한국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은 “(서초구 조례가) 직장내 괴롭힘 정의를 민간부문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 정의보다 넓게 규정하면서도 금지되는 행위 유형으로 공무원행동강령상의 내용을 적시하는 등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행위 주체와 객체의 규정이 불명확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직장내 괴롭힘 정의에 ‘지속적·반복적·의도적’ 기준을 보충해 모호성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혜자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직장내 괴롭힘 예방 업무는 신고-상담-구제센터 설치 운영을 통해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담당부서 설치나 인력·예산지원이 선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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