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12월18일은 23번째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충남노동권익센터는 이날을 즈음하여 지역 이주민의 노동생애를 톺아보는 책자를 발간한다. 충남에는 2021년 기준, 12만4천492명의 이주민이 살아가고 있다. 총인구 대비 이주민의 비율은 5.72%로 전국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다. 정부 통계에서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미등록 이주민들 존재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수의 이주민들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통계 너머, 숫자 너머 이들의 일과 삶은 어떤 모습일까. 센터는 13명의 지역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이 마주한 일과 삶의 구체적 현실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실천과제들을 모색하려 했다. 책을 펴내기 전, 매일노동뉴스 독자들과 함께 원고 한 토막을 함께 나눈다.

ជំរាបសួរ (chomreabsuor·쭘 리업 쑤어), 저는 2017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여러 공장에서 일했어요. 어느덧 6년이 흘렀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갖게 되고 더는 일을 할 수 없어 체류자격을 잃었습니다. ‘불법체류자’라는 낙인 속에서 두 살 아이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어려워요. 우리 아이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 한국에서 지내고 싶어요.”

이주민의 탄생, 떠나올 결심

“집이 가난했어요. 1988년 캄보디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여덟 남매 중 여섯째였죠. 형제자매들과 어머니는 여전히 캄보디아에 살고 있어요. 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어요. … 그러다 친구 동생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가서 일하면서 월급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도 한국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떠나오던 때가 생생해요. ‘고용허가제’로 비자를 받은 사람이 100명 정도 모여 같이 출국했어요. 그중에 여자는 저 혼자였던 게 기억나요. … 처음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는 것도, 한국어도 어려워서 캄보디아에 있는 가족이 많이 생각났어요.”

떠나온 삶, 끝나지 않는 이주

“처음에는 플라스틱 김 케이스를 포장하는 일을 했어요. … 연장근무가 적어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사업장으로 변경 신청을 했어요. 처음엔 사장님이 안 보내주려고 하셔서 애를 먹었죠. … 결국엔 허락해 주셨어요. 당장 일을 그만두고 기숙사를 나오면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일자리를 일주일 만에 구했어요. … 초콜릿공장에서 뽀로로 같은 캐릭터 막대 초콜릿을 만들었어요. … 식비와 숙소 관리비 빼고, 숙소비도 따로 빼니까 남는 게 많지 않아서 1년2개월 정도 일하고 일터를 옮겼어요. … 친구 말을 듣고 광주 빵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죠. 계속해서 무거운 걸 옮겨야 하고 연장근무도 훨씬 많아서 몸이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어도 어렵게 허락을 받아야 했고, 평일에 하루만 쉬는 조건으로 주말에 출근하는 날도 너무 많았어요.”

사랑, 반가운 탄생, 가족

“그 시기에 남편을 만났어요. 아이까지 생기는 바람에 빵공장에서는 1년쯤 일하고 그만두게 됐죠. 임신한 상태에서 계속 연장근무를 해야 하고 무거운 걸 들고 내리니 몸에 무리가 됐고, 아이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됐거든요. … 아이 이름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라’는 의미를 담아 지었어요.”

가족을 구성할 권리, 재생산의 권리

소치타씨처럼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이룬다. 반가운 생명이 태동하는 일을 마냥 반가워만 할 수 없다. 아이를 갖게 되면 일을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일을 지속할 수 없으면 고용을 전제로 한 체류자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도 선주민 노동자와 같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출산전후 휴가와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선주민들도 사용하기 어려운 임신·출산·육아 관련 지원제도를 이주노동자가 이용하기는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제도 자체도 알기 어렵고, 사용자의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 후 출산까지 기간이 남은 체류자격 기간보다 긴 경우, 고민은 더 깊어진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25조3항은 업무상 재해, 질병, 임신, 출산 등의 사유로 근무처 변경 신청을 하기 어려운 경우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1개월 이내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고, 3개월 이내 사업장 변경 허가를 받도록 기간 연장의 가능성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와 협의해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임신진단서 등을 첨부해 사업장 변경 신청, 기간 연장 신청을 할 수 있다. 또 임신과 출산을 사유로 임시 체류 기간 연장 신청과 체류자격 변경 신청 등이 가능하다. G-1-9 비자는 임신과 출산 등으로 즉시 출국이 곤란한 이주민에게 1년의 체류 허가 기간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이주민이 이와 같은 제도를 이해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가족을 구성하는 일은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 사회권이다. 이주민들이 체류자격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돌볼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이주노동자의 가족구성권과 재생산 권리를 다시 생각한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recherche@cnno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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