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노사발전재단은 한국노총이 제안하고 경총과 정부가 동의하면서 2007년 4월 만들어졌다. 노사관계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노사관계발전법) 6조는 ‘국가는 노동단체와 사용자단체가 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공동으로 설립한 노사발전재단이 노사 주도의 자율적 상생의 노사관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재단은 노사정 삼자주의로 설립된 기관이자,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결과물이다. ‘노사발전재단’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노사가 상호 발전하자는 의미가 크다.

노사발전재단이 만들어질 당시 사회적 대화 주체들은 노사가 주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자고 결정했다. 예컨대 ‘노사협력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 사업’ ‘노동단체 및 노사관계 비영리법인 지원 사업’ ‘노사 파트너십 증진을 위한 교육 및 홍보 관련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들을 위해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고용보험은 노사가 절반씩 부담해 노동자들의 직업훈련이나 실업급여를 지원하는 것으로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다. 고용보험기금은 노사가 함께 납부한 돈이니까 노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고용보험기금을 마치 세금처럼 자신들 입맛에 맞게 사용하려 했다. 고용보험기금으로 재단을 운영하려던 노사 합의는 정부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다. 노사발전재단은 설립 취지를 상실한 채 정부의 단순 위탁기관으로 전락했다. 정부가 예산을 주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불가능한 상태다. 노사정 삼자주의 정신은 재단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재단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무총장은 대부분 노동부 관료 출신이 임명된다.

재단 설립 취지 훼손은 내년에 더 심해질 전망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내년 예산으로 295억원을 신청했지만 정부가 100억원이 삭감된 195억원만 편성했다. 삭감된 예산을 살펴보면 노사가 함께 수행했던 사업들이 대부분이다. 구체적으로 재단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노사파트너십 프로그램 지원 사업’(올해 25억원),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었던 ‘노사 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 사업’(18억원), 지자체와 지역 노사가 협력해 운영하는 ‘지역노사민정협력활성화 사업’(16억원), 노사발전재단의 뿌리와 같은 ‘국제교육협력 사업’(5억)들의 내년 예산은 0원이다. 특히 지역노사민정 협력 활성화 사업은 지역 노사정 주체가 안정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으로 분권화된 노사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노사협력의 상징성이 컸다.

노사가 함께 추진하는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 혹은 대폭 삭감하는 대신 사용자를 위한 사업 예산은 오히려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임금체계 개선 등을 지원하는 ‘일터혁신 사업’ 예산은 올해 280억에서 내년 298억으로 오히려 18억원 정도 늘었다. 내년 정부 예산안 방향 중 하나는 ‘비정규직 등 미조직 취약근로자 권익 보호’이다. 그동안 노사발전재단의 사업 대부분이 중소 취약계층 노동자를 대상으로 수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단에 대한 정부의 예산 삭감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다.

한국노총은 지난 6월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폭력으로 진압한 것에 대한 항의로 ‘사회적 대화’ 불참을 선언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복귀를 결정했다. 한국노총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적용유예 등 노동혐오 태도는 여전하고 사회적 대화 의지도 없어 보인다. 마치 ‘노동’이나 ‘노조’ 등 ‘노(勞)’가 들어가는 모든 사업을 없애려고 혈안이 된 것 같다. 정부가 노조를 대화 상대로 보고 사회적 대화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최소한 노사민정 활성화 사업을 비롯해 여러 노사관계 사업에 대한 예산 복원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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