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윤석열 정부가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일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이 참여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다음달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명 이상 50명 미만 기업까지 확대 적용될 예정이던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 기준 규정을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2021년 1월26일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 뒤인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도록 그 적용 유예를 하고 있었다(부칙 1조). 윤석열 정부는 이를 2년 더 유예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유예 추진의 이유로 준비부족과 인력난 등 법을 준수하기 어려운 중소사업장의 현실을 들고 있다. 50명 미만의 중소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이 아직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준비하기 어려우니 법 시행을 유예하겠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50명 미만 회원업체 641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전체 기업의 89.9%가 유예 기간을 더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다며 그 적용 유예를 촉구했다.

2.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추진을 중단하라고 즉각 반발했다. 사업장의 중대재해 피해자인 노동자를 위해 활동해야 할 노동조합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유예는 그 법률의 부칙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처럼 국무회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만약 현재 국회의원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아무리 추진하고자 해도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는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2년간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실시할 준비를 하지 않은 정부의 사과 △2년간 매 분기 구체적 산업현장 안전 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마련 △2년 뒤에는 반드시 법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와 경제단체의 공개 입장 표명과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 통과를 법안 논의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보도됐다<매일노동뉴스 2023년 12월4일자 ‘당정, 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유예’ 추진하지만…’ 기사 참조>. 이러한 보도에 나는 ‘그 논의조건 일부 성취를 내세워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유예에 합세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누구보다도 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을 것을 기대하는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은 나처럼 이렇게 걱정하고 나아가 불안할 것이다.

3.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의 처벌을 통해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제정된 법률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유로 “현대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압사사고,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사고와 같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및 4·16 세월호 사건과 같은 시민재해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등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며 이에 따라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을 처벌함으로써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밝힌 데서 확인할 수 있다(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이유’ 참조).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에서 시행해 노동자들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 윤석열 정부에서는 준비 부족과 인력난 등 중소사업장에서 법을 준수하기 어렵다며 법 시행을 유예하려고 하니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은 중대재해를 입어도 된다는 것인가. 중소사업장에서 근무해도 중대재해로부터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닐 텐데 중대재해는 50명 미만의 중소사업장이라고 해서 발생하지 않거나 덜 발생하는 것도 아닐 텐데 이 나라에서 권력은 중소사업장 노동자 보호를 외면하는 것일까.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산재사망 노동자 1만9천860명 중 사고사망자는 9천380명이고, 이 중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는 1만2천045명, 이 중 사고사망자는 7천138명으로 사고사망자 중 50명 미만 사업장 비율이 76%에 달한다. 50명 미만의 중소사업장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고사망하는 경우가 5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보다 많은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의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 아니다. 중대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중대재해를 방지해야 할 사용자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인데, 당연히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적용해야 하고, 중대재해가 빈발하게 발생하는 사업장에 우선해서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했다.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공포하면서 부칙을 통해 50명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해서 위와 같이 이 나라에서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에 적용되는 걸 유예했다. 중소사업장의 사용자들이 이 법률을 준수할 준비의 부족과 인력난 등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유예했던 것을 3년을 더 유예해 주겠다고 법개정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4. 앞서 제정이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김용균이 끼임사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반성 차원에서 제정된 것인데 지난 7일 대법원은 김용균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원청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53)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기업이 만든 죽음을 법원이 용인했다”고 규탄했다. 원청 사장은 안전보건 방침을 설정하고 승인하는 역할 뿐이고 작업 현장의 구체적 안전 점검과 예방조치 책임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태안발전본부장이 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법원은 이 같이 판결한 것이다.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2018년 12월11일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시행되지 않았으니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사용자에 형사처벌 등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사용자에게 형사처벌 등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50명 미만 사업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2년 유예돼 적용되지 않는데 다시 2년을 유예해 적용되지 않도록 추진하는 것이니 이 나라에서 중대재해 노동자들의 어머니들은 계속해서 “기업이 만든 죽음을 법원이 용인했다”고 규탄하며 절망할지 모른다.

5.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은 이 나라에서 근로기준법을 비롯해서 많은 법률이 존재한다. 법률을 시행할 때는 이상하게도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고 사용자를 보호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연장근로를 포함해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에 관해 300명 이상의 사업장과 50명 이상에서 300명 미만의 사업장, 그리고 50명 미만의 사업장으로 나눠서 규모가 적은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늦게 적용한 것을 들 수 있다.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한 개정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시행도 300명 이상과 미만으로 구분해서 그러했다.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을 가능성이 높고 보다 높은 수준으로 노동자 권리가 보장돼 있는 대기업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중소사업장의 노동자들보다 국가가 특별히 더 법률을 통해 우선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다. 대한민국 노동현실을 보면 대기업 사업장 노동자에 비해 열악한 중소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를 우선 보호할 필요성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나라에서 노동자보호법은 거꾸로다.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제·개정된 법률이 정작 더 절실히 보호해야 할 노동자를 외면한 채 시행됐다. 어째서 노동자를 위한 법률의 시행은 이렇게 거꾸로 향하는 것일까. 그것은 노동자를 위한다는 법률 시행에 법률의 제정 취지에 반해서 기업 사정, 사용자의 사정을 우선 고려하기 때문이다. 준비 부족과 인력난, 재정사정 등 사용자의 사정을 우선 고려하면 중소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보호는 뒤로 미뤄지고, 그 노동자는 더욱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이 나라에서 사용자 자본과 권력은 틈만 나면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등 권리를 대비해서 귀족노동자니 뭐니 비난하지만, 정작 중소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후순위로 외면해 온 자신부터 비난해야 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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