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무성 민교협 노동위원장(전 광주대 교수)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을 더 연장하자는 논의는 노동자 생명·안전에 대한 위험을 가속화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로 실효성마저 의문시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가 ‘적용유예 연장’을 거론한 것은 노동자를 기만한 것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50명 이상 사업장에서도 턱없이 낮은 검찰의 기소율이나 재판부의 양형은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엔 실효성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법적 보완이 요구되는 시점에 내년 1월27일 실시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을 다시 유예하는 건 노동자를 궁지에 내모는 비윤리적인 행태이다.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 특히 일부 경제지를 중심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본래 취지를 왜곡하는 칼럼 등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최근 그 빈도가 더욱 늘었다.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등 자본가 이익 대변하는 단체들이 내세운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재해 예방 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또 경영책임자 처벌은 헌법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주장도 한다. 현장 산재사고 책임을 기업 대표에게 덮어씌운다는 논리로 책임주의, 인과관계원칙,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사회법으로서 노동법의 기본 취지는 사회경제적 약자의 실질적 보호에 있다. 경제단체 주장은 이런 법 취지를 무색하게 힌다.

양곡관리법, 간호법에 이어 방송 3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까지 대통령 거부권으로 무산된 현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연장은 향후 폐지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고용노동부는 50명 미만 사업장의 80%가 준비 부족이 상태라며 사용자 편을 들며 적용유예를 유도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인한 비용증가, 로펌의 법률 컨설팅 등으로 판례가 축적되지 않아 추가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억지 논리까지 확산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고 기업인을 예비 범죄자로 낙인찍는다는 우려도 작위적이다. 그런데도 기업 대표자 실형시 폐업 및 근로자 피해 우려, 입법에 대응할 인력과 예산 부족 등 이전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1년에 2천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안전 소홀로 귀중한 생명을 잃고 있다. 이미 여당인 국민의 힘은 유예 추가연장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당초 입장에서 크게 후퇴해 유예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 개혁 입법을 무력화하는 여당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정부의 사과, 향후 실시 계획 마련 그리고 2년 유예 후 실시에 대한 재계의 확약을 전제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유예로 입장선회를 한 것이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 후 2년 만에 제정된 법률인데도 현장에서 유예기간 연장, 지원확대 등을 이유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의 궁색한 유예 명분을 노동계에선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사업주 역량구축이 수십 년간 답보상태인 50명 미만 사업체에서 중대재해 80%가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오히려 법 적용을 확대해 5명 미만 사업장까지 포함하도록 나아가는 것이 합당하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부재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사용자 편을 드는 건 노동자에 지나친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사용자의 당연 의무를 투입 대비 산출이란 효율의 잣대를 들이대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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