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삶)

건설노조와 언론노조 그리고 여러 무수한 현장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대리하고 2018년 노동교육센터 ‘늘봄’을 설립해 노동교육 활동에 헌신해 온 김민아 공인노무사.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노노모) 전 사무국장인 김민아 노무사가 지난 12월7일 44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12월9일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도식이 있었고, 12월10일 고양의 일산공감수목장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했습니다.

맑고, 밝은 목소리에 누구에게나 에너지를 주는 작은 거인, 김민아 노무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자문을 했던 언론노조, 대학 동료들, 노무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뉴스레터를 함께 만들고,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했던 다양한 관계들이 김민아 노무사의 죽음을 안타까워했고, 구체적인 관계와 사연들로 추모하며, 그리워했습니다.

저는 김민아 노무사와 같은 해에 노무사 합격을 했던 동기입니다. 합격 소식을 듣고, 낯선 사람들이 잔뜩 모인 그곳, 뒤풀이 자리에 마주 앉았던 사람이 바로 김민아 노무사였습니다. ‘노동자의 벗(노벗)’ 활동을 하며,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노무사가 되겠다고 단박에 말했던 기억과 학생운동 때 이야기로 수다를 떨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우리는 ‘노벗’ ‘노노모’를 함께 했지만, 서로 바빠서 간간이 안부만 묻고 서로의 활동을 응원하면 살았습니다. (사실 제가 힘이 되어준 것보다 김민아 노무사의 응원에 제가 힘을 받은 적이 훨씬 많았죠.)

그런데 2016년께 암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2020년 말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이 와서 노노모 동기들과 모여 파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민아 노무사는 손수 동기들 하나하나 색깔도 다르게 세심하게 목도리를 떠서 선물을 해 줬고, 새로운 출발을 힘차게 준비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22년 재발 후 치료를 받다가 이렇게 세상을 등지게 된 것입니다.

집도 가깝고, 사무실도 가까운데, 동네 맛집도 소개해 준다고 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없게 됐습니다. 누구나 후회하는 것이지만 연락하고, 얼굴을 보고 그랬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우리 사무실에 방문해 응원을 받았던 때가 마지막이고, 그때 같이 찍은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라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젊은 나이의 암투병과 재발이었지만 김민아 노무사는 꿋꿋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한 것 같습니다. 추도식 안내지에 있는 다음 인터뷰 내용을 전합니다. 김민아 노무사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큰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6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치료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지금 딱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보르헤스의 말>이라는 책에서 “어차피 곧 죽을 텐데, 어떤 순간이든 죽음이 닥칠 수 있는데
왜 이런저런 일로 걱정을 해?”라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길고 짧을 뿐 어차피 가만있어도 죽을 텐데,
죽고 싶어 하는 마음조차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이 진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죠.

저는 이때부터 욕구를 자제하거나 수줍어하는 태도가 겸손이라기보다는
영원히 살 것으로 생각하는 자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든 짧든 자기 생을 살아낸다는 것은 자신이 진짜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사람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얼마나 성실하게 해내느냐 아닐까 싶어요.
저는 저의 일을 통해서 제 인생에서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뉴그라운드 ‘일하는 사람, 김민아의 내-일을 위한 스스로 인터뷰’ 중)

찬란하게 빛나는 불꽃 같은 김민아 노무사를 추모합니다. 김민아 노무사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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