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혜 안전관리 노동자

다치지 않고 일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대부분 방호장치 설치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굉장히 많은 산업재해 언론보도에서 방호장치 문제를 가장 많이 제기하고 있는 데다, 방호장치를 설치하지 않았거나, 설치했더라도 관리가 안 돼 오작동으로 재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호장치 하나 설치한다 해도 재해예방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설비 개조·개선은 안전보건조치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을 채우려면 안전작업지침과 안전작업절차서-표준작업절차서(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가 필요하다. 지침과 절차서를 통한 직원 직무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방호장치를 설치했더라도 안전한 작업을 위한 자세나 절차, 설비 작동 방법을 제대로 모른다면 재해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차에 대한 영역은 오랜 시간 동안 암묵적 지식, 이른바 ‘암묵지’로 전수되고 있다. 숙련된 작업자 밑에서 도제식으로 온갖 욕을 먹어가며 일을 배우는 것이 아직도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초짜’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당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대기업 사내하청회사에서 근무했던 시절, 이웃 회사에 21살짜리 직원이 입사했다. 어정쩡하게 취업 준비하다 세월 보낼 바엔 일찌감치 배관이나 용접기술 배워서 먹고 살려고 들어온 직원이었다. 당시 배관사나 용접사 하루 일당이 20만원 언저리였고, 보조공도 15만원 언저리 받는 데다, 야근이나 주말근무 시 0.5공수(일당제 급여의 기준으로 1일 8시간당 1공수다.)씩 더 받으니 한번 도전해볼 만하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평택 반도체 공장 용접사나 배관사들이 일용직이지만 고임금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아예 틀린 선택도 아니었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비계발판 위에서 배관 옮기다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넘어졌고, 발목과 허리를 다쳤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있었지만, 법은 통과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안전보건체계 수립이 미흡한 시절이었다. 안전보건지침이나 안전작업절차서를 통해서 자기가 할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현장에 투입돼야 했지만, 교육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내내 반장들에게 욕 얻어먹으며 몸으로 일을 배우니 이러나저러나 다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발목과 허리마저 다치게 된 것이었다. 이전에도 현장에서 그라인더 작업하다 손인지 팔인지를 다쳤는지 한 손을 부여잡고 사무실로 가는 걸 목격한 적 있었다. 발목과 허리마저 다쳤으니 일이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을 거다. 결국 그렇게 됐다. 만약 이 직원에게 회사에서 마련한 안전보건지침이나, 안전작업절차를 배웠다면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가끔 스친다.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안전보건지침이나 안전작업절차에 대해 많은 사업장들이 무심하다. 근로감독관들에게 지적당하고 과태료 딱지 끊기 싫어서 형식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 규칙인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과 안전보건공단에서 만든 KOSHA Guide를 기반으로 사업장 특성에 맞게 안전보건지침을 수립하고, 이를 통해 각 작업에 대한 안전장비와 수공구 및 전동공구를 파악하여 올바른 작업 방법과 위험요소를 기록해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 사진을 첨부하면 더 좋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안전작업절차서를 통해 신입 직원들이나, 다른 업무로 배치된 작업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교육 겸 직무교육을 실시한다면 지금보다 재해를 더 많이 줄일 수 있다.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4만6천861명 중 입사 근속기간이 1년 이내인 노동자가 전체의 47.5%다. 죽지 않고 다친 노동자까지 합친다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더 이상 다치지 않고 일하려면 방호장치만큼이나 안전보건교육도 필수다. 어떤 측면에선 안전보건교육이 작은 사업장에서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사업장의 특성과 주요 작업에 최적화된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업장 내 숙련공들과 관리자, 안전보건담당자들이 중지를 모아 안전보건지침과 안전작업절차서를 수립해야 할 것이며, 절차서가 있다면 꾸준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암묵지가 아닌 절차서가 우선인 사업장, 안전한 사업장을 위한 첫걸음이다.

안전관리 노동자 (heine03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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