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홍준표 기자>

공무원들이 기피하는 부서인 장애인복지팀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업무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다가 뇌출혈을 일으켜 숨진 사회복지 공무원에게 법원이 ‘공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인사처, 주당 근무시간 짧단 이유로 불승인

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사회복지 공무원 A(사망 당시 45세)씨의 배우자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순직유족급여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02년 경산시 사회복지직 9급으로 임용된 뒤 2007년부터 약 9년간 사회복지과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2016년 1월부터 장애인복지 업무를 맡으며 시련이 생겼다. A씨는 장애인단체 보조금 지원과 재활시설 지원·관리,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 등을 담당했다. 장애인복지팀은 스트레스가 큰 업무 특성 때문에 사회복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가장 근무환경이 열악한 부서로 꼽혔다.

A씨는 팀에 배치된 이후 자주 피로와 두통을 호소했다. 5년여가 2021년부터는 업무가 더욱 늘었다. 2020년께 경상북도에서 코로나19 최초 집단감염이 시작되자 A씨는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 담당자로 지정돼 감염병 취약시설에 대한 방역 점검 업무를 수행했다. 여기에 2021년 5월께 경산의 장애인 시설 ‘성락원’에서 입소 장애인을 물고문 등으로 학대한 정황이 드러나 스트레스가 가중됐다.

마지막 근무 일주일 전에는 건강 악화와 장기근속을 이유로 전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체에 ‘경고음’이 울리는데도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A씨는 2021년 10월31일 오전 8시38분께 자택 욕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에 이송됐지만, 8일 만에 ‘지주막하 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A씨 유족은 공무상 재해라며 순직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인사처는 A씨 초과근무 일수가 적다는 이유로 과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인사처 조사에 따르면 A씨는 뇌출혈 직전 3개월간 월 평균 34시간51분을 초과근무했다. 3개월간 1주 평균 근무시간은 48시간2분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의 과로 산재인정 관련 고시가 정한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하는 기준’인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균 52시간 초과에 미치지 못했다.

법원 “기피 보직 장기간 담당, 스트레스 누적 방증”

그러자 유족은 지난해 8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뇌출혈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망과 공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인사처측은 A씨 근무시간이 비교적 길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상병 발병 전 12주 동안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에 미달한다고 해서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A씨가 주당 평균 48시간 이상을 계속 근무해 일반 공무원의 주당 기본 근로시간인 40시간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다른 공무원보다 일주일에 하루를 더 일한 셈이다.

A씨가 약 5년10개월간 같은 부서에서 업무하며 숙련돼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과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사처측 주장도 일축했다. 재판부는 “고인의 업무는 단순히 근무시간 외에 단위시간당 부담 측면에서 더 심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야기하는 업무였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다른 공무원들이 기피하는 보직을 장기간 담당했던 사정은 고인에게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됐음을 추정케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 감정의 역시 “고인의 평소 혈압은 양호했고, 뇌출혈을 일으킬 만한 기왕증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소견을 냈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과로를 판단할 때 단순히 물리적 시간만을 계산하는 것이 아닌, 스트레스 정도가 높은 장애인 복지업무의 특성을 법원이 받아들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직무상 과로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과 겹쳐 질병을 일으켰다면 직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판례 태도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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