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가 5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공청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갈무리>

국회가 ‘산재 선 보장 제도’ 도입 논의에 첫발을 디뎠다. 긴 역학조사 기간 때문에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노동자가 숨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산재보험을 우선 적용하자는 취지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제도개선 주장에 여당이 호응하면서 이뤄졌다. 다만 최근 당정이 산재보험급여를 부정수급하는 ‘산재 카르텔’을 언급하고 재계가 동조하면서 산재 선 보장 논의가 제대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재해조사 길어지면 국가가 우선 보험적용
“먼저 산재보험 적용, 사후 심사로 거르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5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공청회를 열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개정안은 산재 국가책임제 도입이 핵심이다. 국가가 재해조사 기간을 도과하고도 승인 여부를 결론짓지 못하거나 업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에 대한 의학·과학적 연구가 미흡한 경우 국가가 산재보험을 우선 적용하는 내용이다.

업무상 사고는 7일, 업무상 질병은 90일까지 재해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역학조사 등 보다 전문적인 조사가 필요한 경우 180일의 기한을 설정했다.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 판단 기준에 의학적·과학적 기준 외에도 사회적 규범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의사가 재해자 대신 산재신청을 할 수 있는 규정도 있다.

우리나라의 산재 역학조사 기간은 길고, 조사 중 숨진 노동자는 적지 않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소요일수는 1천72일이고,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 소요일수는 581.5일이다. 2017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367명이 산재 심사 중 숨졌다.

산재사건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은 법안에 찬성했다. 신속한 산재보상으로 재해자의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이는 산재보험 취지에도 맞는다는 이유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위원을 지낸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은 신속 공정한 보상인데 2~3년에서 7년에 이르기까지 늦어지는 역학조사로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대법원 판례 등은 사회 규범적 판단에 기반해 상당인과관계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데, 공단은 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해 행정소송 패소율이 높다”고 지적했다.

성공회대 겸임교수인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산재보험의 산재는 사회보험 혜택을 줄 수 있는 범위”라며 “국가의 재정적 능력, 사회적 합의와 사회보장제도의 수준 등에 따라 그 범위가 다양하게 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 보장 제도에 대해서는 “현재 건강보험이 하는 것처럼 재해 노동자가 병원에 방문하면 자동으로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사후 심사를 통해 산재가 아닌 것은 걸러 내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부실조사와 불합리한 판정 이어질 것”

재계는 반대했다. 법정 재해조사 기간을 설정하면 공단의 부실 조사와 불합리한 판정이 이어진다는 논리다. 이강섭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 책임위원은 “재해조사 기간 설정에 앞서 부족한 재해조사 인프라를 확충해 처리 기간이 얼마나 단축되는지 먼저 살펴보는 게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서정헌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부실조사와 불합리한 판정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보험급여를 우선 지급하면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진다”며 “재원이 불분명하고, 어떤 형태든 사업주가 직·간접적으로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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